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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황금나침반 텐프로 룸살롱녀 출연, SBS 왜 이러나

 

‘공중파에 ’텐프로‘ 아가씨 출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털 메인에 있길래 당연히 낚시인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래도 ‘다음’에 뜬 기사라 클릭했다. 요즘 기존 언론사가 직접 메인 화면 기사를 구성하도록 한 모 포털 사이트 같았으면 아예 클릭도 안 했을 것이다. 거긴 선정적이고 어처구니없는 낚시 기사가 난무하니까.


기사를 보니 황당하게도, 사실이다. SBS가 <황금나침반>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거기에 이른바 텐프로 룸살롱이라는 유흥업소 종사자가 출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룸살롱도 그렇고 텐프로도 그렇고 사람들의 은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어들이다. 또 대단히 민감한 키워드들이기도 하다.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그런 키워드를 전면에 배치한 것은 어쨌든 성과를 거뒀다. 덕분에 프로그램이 시작도 하기 전에 포털 사이트 메인에 소개됐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관심을 끄는 것이 공중파가 할 일인가?


직종을 차별하는 건 아니다. 난 유흥업종도 당당한 직업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공중파까지 나서서 소개해 줄 업종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이런 류의 업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일컬어 ‘퇴폐향락’이라고 한다. 퇴폐향락이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누구나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유희를 즐길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사회가 무너진다. 퇴폐향락은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더구나 건전한 노동의 가치와 노동에의 의욕이 날로 무너져가는 것이 요즘의 가장 큰 문제인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산업국가다. 산업국가에서 노동의 가치가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노동의 가치 정 반대편에 있는 것이 퇴폐향락이다. 고루한 도덕관념이 아니라 퇴폐향락이 지나치게 폭주하면 정말로 우리나라는 망할 것이다.

 

- 한 달에 1,000만 원 버는데 불안이 대수인가? -


기사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원래 모델 지망생이었으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임시로 룸살롱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곧 그만 두려 했지만 월수입 1,000만 원에 달하는 생활에 적응하다보니 결국 업계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스튜디오에 출연해 수많은 명품들을 비롯해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털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걸 보면 사람들 뇌리에 ‘불안’, ‘두려움’ 이런 것들이 박힐까, 아니면 ‘월수입 1,000만 원’, ‘수많은 명품들’, ‘화려한 생활’ 이런 것들이 박힐까?


당연히 후자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고, 청년실업에 청년비정규직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이런 판국에 월수입 1,000만 원에 화려한 명품?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퍼져나가면서 사회의 노동의 가치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쉽게 큰 돈을 벌려는 풍조를 공중파가 조장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사회를 퇴폐향락화해 제정로마가 허무하게 무너진 것처럼 한국사회를 취약하게 할 것이다.


- SBS 왜 이러나? -


SBS는 얼마 전에 일본의 포르노 배우를 취재하며 물의를 일으켰었다. 그때 상당한 질타를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충분히 욕을 하길래 나까지 나서서 돌을 던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SBS에게 그 정도의 비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나보다. 포르노 배우로 욕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룸살롱녀인가? 포르노 배우 사건 때까지만 해도 화는 나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화가 난다. 시청자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2008년도에 케이블 TV의 선정성이 많은 질타를 받았었다. 2009년도가 되니 공중파가 한 술 더 뜨는 모양새다. 케이블 TV가 욕먹는 것 뻔히 보면서, 또 자신들도 불과 얼마 전에 질타를 받았으면서, 이렇게 ‘니들은 욕해라, 우린 시청률 장사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에 화가 안 날 수 없다. 이런 식의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든다.


거듭 말하지만 퇴폐향락이나 음란물이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은 절대로 아니다. 룸살롱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억압일변도로 가는 것도 좋지는 않다. 공중파가 지켜야 할 선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밤거리에 룸살롱 전단지가 휘날리고, 케이블 TV에서 유흥업소가 나온다 하더라도, 공중파에서만큼은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한다.


유흥업은 각자 알아서 조용히 즐길 일이지 공중파가 전 국민 앞에서 깃발을 치켜들 일은 아니다. 포르노, 룸살롱 등을 조명하는 게 그렇게 좋으면 공중파 반납하고 차라리 성인 케이블방송을 선언하라. 그게 제작자나 보는 사람이나 서로 편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