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홍대를 인디문화 클러스터로, 대학로를 공연문화 클러스터로

 

이전 글 ‘서울에서 동성애자가 춤추게 하라’에서 게이 지수, 보헤미안(예술인) 지수가 높은 도시가 결국 하이테크성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약자나 타자에 대한 관용성과 개방성이 도시의 매력도와 창조적 활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보헤미안 지수를 높일 곳이 어디일까?


홍대와 대학로다. 이 지역들이 서울을 매력적이게 한다. 이 지역은 즐거움을 생산하는 문화발전소가 될 가능성이 있는 곳들이다. 문화발전소가 성공하면 서울의 도약도 성공한다. 몰개성의 회색빛 시멘트 정글에서 생명이 약동하는 개성적인 젊은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클러스터란 말은 어떤 종류의 산업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는 현상이나 그 지역, 혹은 그 덩어리 전체를 말한다. 아무리 IT다 뭐다 해도 결국 사람은 만나야 통한다. 사람이 모이기 위해선 지역이 좁아야 한다. 서울 전체의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말은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


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산업이 발달할까? 그 지역 사람들이 그 산업에 적합한 신체로 태어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 지역에 그 산업에 필요한 자원이 있어서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성이다. 어떤 이유로 특정 지역에 특정 산업의 맹아가 생기면 관계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그 지역엔 비교우위가 발생한다. 그 다음부터는 선순환이다. 사람과 기업과 자본과 서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여들어 한 지역이 발달하는 것이다.


문화 부문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로 홍대를 중심으로 인디 음악가들이, 대학로에는 연극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단 모이기 시작하니까 탄력이 생겨 유관인들과 유관 업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인다. 그 결과 강력한 비교우위가 형성됐다. 클러스터의 싹이 나타난 것이다.


가능성 있는 한 지역을 죽이는 건 미친 짓이다. 그 산업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그 미친 짓을 해왔다. 대학로는 가난한 예술인들로 인해 매력적인 지역이 됐다. 유명해지니까 개발한답시고 길을 넓히고 건물을 정비했다. 땅값이 뛰었다.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소극장과 연극인들이 쫓겨난다. 거리에 매력과 개성이 사라진다. 몰개성적인 유흥가가 하나 더 생길 뿐이다. 미친 짓이다.


홍대의 후미진 집들엔 가난한 미술가, 디자이너, 음악가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때문에 거리에 에너지가 생겨났다. 개발하니까 다 쫓겨나고 느는 건 삽겹살집뿐이다. 한국의 척박한 문화토양에서 공연클럽은 이윤을 남기기 힘들다. 디스코텍은 돈을 벌 수 있다. 시장논리에 의해 클럽이라는 이름의 디스코텍이 양산되고 있다. 문화발전소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 유흥타운을 만들고 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대학로와 특히 홍대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자유롭고 즐겁다. 홍대 지구엔 흥분이 있다. 서울의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개성이다. 그 개성이 서울의 매력이 될 수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은 정책적으로 클럽타운을 육성했다. 인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창조적인 머리들은 즐겁고 매력적인 도시에 남는다. 하이테크 도시인 텍사스 오스틴 역시 인디 그룹 클럽 문화로 유명하다. 시청 앞 광장에서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여는 것이 문화적 즐거움의 다가 아니다. 그런 식의 페스티벌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보다 흥분되고, 보다 역동적이고, 보다 개방적인 지역이 필요하다. 그 지역이 서울을 창조적인 도시로 이끌 것이다.


서울의 약점은 짜증나는 콘크리트 덩어리 주제에 엄청나게 땅값만 비싸다는 데 있다. 서울의 가능성은 정도 600년의 역사도시라는 것과 인디문화지구에 있다. 도심 역사 문화지구 복원 사업은 그래서 서울의 매력 지수를 높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다. 그런 역사적 향기가 도시에 개성을 부여하고 인재들을 잡아끈다. 당연히 기업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땅값과 물류비는 무조건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양적인 집적을 멈춰야 한다. 도심 역사 문화지구에서부터 녹지축을 건설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서울이 한가한 휴양도시가 될 순 없다. 프랑스 소피아-앙띠폴리스 같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혁신도시를 서울이 흉내내긴 힘들다.


그 약점은 역사문화와 함께 도시의 ‘소란’으로 상쇄한다. 도심의 역사 문화지구와 녹지축은 정적인 공간이다. 그 양 날개로 좌 홍대, 우 대학로는 에너지가 좌충우돌하는 시끌시끌한 공간이다.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들끓는 흥분이 서울의 매력이 된다.


물론 매력만 있으면 곤란하다. 돈도 있어야 한다. 돈은 강남이나 용산신도시, 구로 디지털 밸리, 강북 메디클러스터 등등등 ‘돈독’ 오른 지역에서 벌면 된다. R&D는 홍릉벤처벨리나 대학에서 하고. 역할 분담이다. 홍대의 소란을 용납할 관용은 서울의 문화지수를 높인다. 그것은 인재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창조성을 발휘할 문화적 인프라의 역할을 한다.


발전소다. 그런데 석유, 석탄을 넣고 태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재능을 태워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강남에도 문화는 있다. 강남의 문화는 시장논리에 따른다. 즉 SM기획이 있어야 할 곳은 강남이란 소리다. 홍대나 대학로는 강남 대형 극장에 설 수 없는 예술가들, 바닥의 보헤미안들이 모여 질주하는 참여적이고 국제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이탈리아를 먹여 살리는 건 아직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그들의 지원으로 꽃을 핀 르네상스의 후광이 이탈리아 브랜드를 빛나게 한다. 이탈리아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르네상스를 구매하는 것이다. 한국의 이탈리아 명품 OEM 제작사가 같은 품질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놔도 소비자들이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은 한국 국가브랜드엔 그런 후광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는 한국 브랜드에 후광을 만들어준다. 한국이 공장 잘 돌리는 나라에서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하려면 문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한류 음악은 한국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 지금의 한류를 만든 건 삼성과 현대다. 그들의 한국 경제 이미지가 투영돼 한류에 동남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한류는 한국의 자원을 빼먹고 있다.


SM기획식 문화는 창조하는 문화가 아니다. 시장에서 당장 돈을 버는 문화는 소비문화일 뿐이다. 그것은 한국브랜드의 후광이 될 만큼 빛나지 않는다. 영화가 스크린쿼터를 발판으로 한국에 후광을 비출 만큼 성장한 것처럼, 음악과 공연예술도 한국에 후광을 비출 만큼 성장시킬 수 있다. 그 출발은 인디 문화에 대한 강력한 공공적 지원이다.


시장논리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창조활동을 할 수 있게 공공이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홍대와 대학로를 특별 예술 지원 지구로 육성하는 거다. 공공이 메디치 가문이 되어 시장논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안목과 의지로 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한다.


일단 공연장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돈 몇 푼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포항제철공장을 짓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인디음악가들이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녹음, 출반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연습실을 마련해줘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거주할 공간까지 제공돼야 한다. 이것들을 다 해도 그리 큰 돈이 들진 않을 거다.


인디는 문화다. 음악만이 아니다. 만화, 독립영화, 디자인, 미술, 엔터테인먼트 모두 홍대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 만화 잡지를 발간하고, 독립영화 편집실 등 지원시설을 배치하면 그 지역을 중심으로 창조성들이 집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보와 경험이 종횡으로 접속하며 창조성이 폭발한다. 이런 것이 클러스터다.


예술인과 인접한 창조계급(전문직 종사자)들은 그 지역에 즐기러 온다. 그렇게 되면 시장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술집과 (춤추는) 클럽이 늘어나고, 건물도 정비된다. 그럴 때 공공은 건물 디자인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이미 제2롯데월드탑이 꼴 보기 싫다고 퇴짜 놨던 선례가 있다. 건물 디자인은 공공의 자원이다. 문화 클러스터가 국적불명의 회색 유흥가가 되지 않도록 건축디자인을 관리해야 한다.


대학로에서는 극장과 극단을 지원하고, 배우들의 연습공간과 학습을 지원할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무대예술이나, 조명, 의상, 작가 그리고 인접 예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강구돼야 한다. 그리고 대학로 연극 거리 어딘가에 있는 디즈니성 빌딩같은 천박한 건물이 다시는 생길 수 없도록 역시 거리 건축디자인 규제 시행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의무적으로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지어나가야 한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건물처럼(이 건물로 지자체에 약 4조 정도의 경제 효과가 파생됐다고 함)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예술적인 기념비들을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페라하우스 프로젝트를 무조건 반대만 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 돈이면 다른 건물을 먼저 지을 수 있다. 난 홍대 인디 문화 클러스터에 문화발전소(지원센터)를 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오페라하우스는 환경미화 외에 즐길 수 있는 길이 한정돼있다. 홍대 지역에 파리 퐁피두센터 같은 괴물을 지어 인디문화지원을 위한 복합공간으로 이용하면 공동체에 훨씬 크고 실질적인 효용이 된다.


공공이 약간의 관심만 보이면 홍대지구와 대학로에서 문화의 대대적인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인디문화와 공연문화가 설령 그 자체로 돈을 못 번다 할 지라도 그 문화의 매력이 인재들을 모이게 하고 관광객들이 모여 들게 할 것이다. 그 이질성의 접촉이 서울의 다양성 지수를 높인다. 그 창조성이 서울을 국제적인 하이테크 도시로 도약시킨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아래서부터 끓어올라 축적된 문화적 역량은 언젠가 국가가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