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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장기하의 원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요즘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단순히 어떤 노래가 좋아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발생한 화제성이 아니다. 아무리 장기하와 얼굴들이 인기를 얻었다 한들 공중파 쇼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주류 가수들보다 더 하겠는가.


 장기하와 얼굴들이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주류 가수가 아닌 인디밴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디밴드가 인기를 모으는 것은 그간에도 간간이 있어왔던 일이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도 있지 않은가. 단순히 인디밴드 하나가 인기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장기하와 얼굴들에 쏟아진 이례적인 관심을 설명할 수 없다.


 수많은 평자들과 매체가 일제히 장기하라는 새 얼굴에 주목한 것은 그가 현재의 시대, 현재의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새로는 코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평자들은 그것을 일컬어 ‘루저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장기하의 ‘싸구려커피’에서 연상되는 것은 미래도 희망도 없는 어느 청년이 지하방에 비치는 햇살에 만족하며 싸구려 커피 한 잔을 음미하는 광경이다. 이것은 취업전쟁에 시달리며, 고액 등록금 때문에 채무자 신세가 되고, 장차 비정규직 신세를 피할 수 없는 한국 ‘88만원 세대’의 송가로 인식됐다. 이렇게 당대의 사회상과 새로운 청년문화를 대변했기 때문에 장기하는 이례적인 주목을 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하를 통해 새롭게 인디의 존재를 알게 되고, 루저문화란 것을 입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2000년대식 청춘의 송가를 부른 것이 장기하가 최초일까? 아니다. 장기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적인 존재가 아니다. 장기하도 인디밴드들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사람일 뿐이다.



 장기하 이전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있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2004년에 ‘스끼다시 내 인생’과 ‘절룩거리네’가 수록된 앨범을 발표했다. 스끼다시, 즉 곁반찬 인생으로 절룩거리며 살아간다는 루저의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제목들이다.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지루한 옛사랑도 구역질나는 세상도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 게 다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의 가사다. 가히 루저문화의 선도자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장기하의 노래에 음습한 가사와는 달리 밝은 리듬감이 있는 것처럼, 이것도 노래로 들으면 가사처럼 음울하지 않고 정감어린 선율이 귀에 감긴다. ‘싸구려커피’의 매력에 빠진 분들은 ‘절룩거리네’를 찾아서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스끼다시 내 인생’도 비슷한 분위기다.


 나는 뭐 잘났나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신문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 스끼다시 내 인생

 언제쯤 시사미가 될 수 있을까 스끼다시 내 인생


 요즘엔 음울한 분위기가 절대로 안 통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아이돌 노래를 즐기는 친구들에게 다시 말하자면, 이 노래는 절대로 어둡지 않다. 가사만 그럴 뿐이다. 선율은 밝을 뿐만 아니라 미묘하게 흥겹기까지 하다.



 요즘엔 기획사에서 자본을 투여해 만든 노래가 아니면 공중파에서 접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그렇게 물량을 투입해 상업적으로 제작한 기획물만이 음악의 모든 것이라고 알고 크는 세대는 불행하다. 화려한 상업물의 세례 속에서 어떤 감수성을 키울 수 있을까?


 TV에서 이런 노래들을 들려주지 않으면 찾아서라도 한번쯤 들어볼 것을 권한다. 세상엔 기획사와 아이돌의 영역 바깥에서 ‘음악’이란 걸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음악이 끊기지 않을 테니까.


 혹시라도 장기하를 보면서 ‘어 이런 사람도 있었네’라고 느꼈던 친구가 있다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그리고 또 많은 음악인들을 찾아보면 좋겠다.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현재 우리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청춘의 송가’를 만드는 이들이다.


* 제 책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