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캐논, 니콘, 디까에 분노하다

 

얼마 전에 낭보(?)가 전해졌었다. 일본 캐논사의 최고급 DSLR 카메라에서 결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일본은 현재 정밀 광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그런 곳에서 나온 결함 소식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의 모든 후발주자에게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는 허무하기만 했다. 캐논 DSLR에서 결함이 발견되든 말든 한국과는 상관없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워낙 격차가 심해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한국 산업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삼성 전자 반도체 불량률이 어떻게 되건 말건 소말리아 국민들 입장에선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다. 대신에 일본과 대만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캐논사의 불량 문제와 한국인이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건, DSLR 분야에서 한국의 지위가 반도체에서의 소말리아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물론 과장을 보태서 그렇다는 말이다.


- 정밀기술이 우리의 살 길 -


한국은 정밀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일무역적자에 시달린다. 완제품 조립 기술은 곧 중국이 우리 덜미를 잡을 것이다. 샌드위치 신세라고 우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정밀기술·지식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제조업 육성보다 금융 서비스업에 치중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자본시장개방, 금융자유화, 한미FTA 등이 추진되지만 금융 서비스업 중심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미국발 경제위기로 증명됐다.


우린 기술을 발전시켜 세계 최고의 정밀제조업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닌, 고용을 동반한 경제구조가 만들어지고, 거대한 중산층 노동자 집단이 생겨 정치적으로도 안정된다.


정밀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 발끝에도 못 쫓아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DSLR이다. 이런 분야에 예민해져야 한다.


- 국적 무시하는 세계화주의자들 -


과거 한국이 처음으로 국산차 개발 계획을 시작할 때 그랬다. 세종로 거리를 보며 ‘저 거리에 운행하는 외제차, 일제차를 모조리 국산차로 바꿔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다.


한국이 자동차 산업을 개시할 때 모두 미쳤다고 했다. 외국인도 그랬고 내국인도 그랬다. 현대자동차 직원들도 국산차 개발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후 국보위도 한국 자동차 산업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가능성도 없으며, 품질도 나쁘고, 돈만 많이 들어가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미국인들이 한국 중화학 산업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주입시킨 논리였다.


이런 논리는 디워 사태 때 디까들에게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과거에 외세와 매판세력이 주장했던 논리를 이젠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황당함을 우린 목격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진작부터 이런 논리가 득세했다면 오늘날의 산업국가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산업육성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부실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본을 모아주고, 국민은 국산품 애용으로 수십 년간 희생했다. 그것이 오늘 날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자동차, 조선, 화학, 전자, 철강 공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젠 정밀기술 분야에 그런 결의를 적용할 때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길바닥에 일본 회사인 캐논, 니콘 카메라가 넘쳐나는 것에 원통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을 추격하고 대체할 기술을 육성하자는 단호한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 오기와 분노를 잃어버리다 -


한국인의 심장 속에서 오기가 사라져버렸다. 세종로에 다니는 일제차, 외제차를 밀어버리기 위해 독기를 품었던 것 같은 오기가 사라진 것이다. 돈 주고 외제품 사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디까들은 한가하게 영화의 품질을 논했고, 카메라 애호가들은 카메라의 품질만을 논하고 있다. 국적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면 산업국가로서 한국의 미래는 없다. 공허하게 차세대 성장동력, 샌드위치 신세, 중국 추격론이나 떠들어대다가 서서히 몰락해갈 것이다. 한국 산업발전 1기는 마무리됐다. 그러면서 시작된 금융 자유화 실험은 우리에게 두 번의 경제위기와 양극화를 선물하며 파탄으로 귀결됐다.


돈 주고 사서 쓰는 것 말고, 우리의 정밀기술, 우리의 부품기술, 우리의 영화 특수효과 같은 고부가가치 기술과 지식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인이 안정적으로 먹고 산다. 먹고 사는 문제에 안정성이 사라지면 한국은 영원히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할 것이다. (80년대 경제호황 뒤에 민주화가 되고, 2000년대 민생파탄 뒤에 이명박 정부라는 역주행이 찾아온 것을 상기할 일이다.)


그러려면 과거의 오기를 되찾아야 한다. 길바닥에 외제차를 보며 ‘욱’했던 마음. 그 마음 그대로 길바닥의 캐논, 니콘을 보며 ‘욱’하고, <트랜스포머>의 대활약을 보며 ‘욱’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외국 제품, 외국 영화의 품질을 찬양하는 것을 좌우파 모두 자랑으로 여기고, 젊은이들은 외제차나 동경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