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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선덕여왕 엄태웅 맹탕에서 벗어나야

 

<선덕여왕> 11회 막판에 엄태웅의 눈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엄태웅의 눈빛은 계속해서 불안한 듯 흔들렸었다. 그에 따라 존재감이 조연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모처럼 눈에 의지를 담은 모습을 보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반가웠다. 바로 이것이다. 엄태웅은 이렇게 보다 단호하고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존재감이 산다. 그동안은 너무 복잡했다.


기본적으로 <선덕여왕>에서 엄태웅은 연기과잉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고뇌, 공포, 염려 등이 뒤범벅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용맹, 결단 등의 덕목이 혼란스럽게 잠겨있다. 이것이 엄태웅이 김유신으로서의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 무기력 허당 김햄릿 -


<선덕여왕>은 4대 캐릭터가 중심을 이루는 드라마다. 이요원과 고현정이 2강을 이루고, 박예진과 엄태웅이 2중을 형성하며 4강의 한 축씩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엄태웅의 포지션은 사실상 텅 비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엄태웅이 맡은 역할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군 중의 한 명이었던 김유신이다. 그 정도 역할이면 기대되는 바가 있다. 엄태웅의 과잉연기는 이런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전쟁영웅 김유신을 혼란한 김햄릿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꼭 김유신 역할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 설사 이름없는 무명 병졸이어도 주인공이면 주인공다운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존재감은 사건의 주체일 때에만 발생한다. 엄태웅은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주저하는 태도로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도저히 주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고, 그에 따라 ‘허당’인 캐릭터가 됐다.


엄태웅이 <선덕여왕>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흔들리는 눈동자, 주저하는 표정, 맥 빠진 목소리 등. 여기에 결혼 못하는 남자 지진희도 아닌데 축 처진 이미지까지 겹쳤다. 작가주의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이런 캐릭터도 가능할 수 있겠으나 영웅적 시대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완전히 실격이다.


주인공으로서 캐릭터가 약할 뿐만 아니라 리얼리티조차 없다. 평생 오로지 임전무퇴의 정신 속에 무사로 길러진 사내가 어떻게 전쟁에 출전해 그렇게 동요할 수 있단 말인가? 엄태웅은 적병의 칼이 자신을 내려치려 하자 눈을 감기까지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투 후에 보인 심리적 동요의 표현도 너무 과잉이었다. 스파르타 300인의 무사들보다 더 용맹한 전사로 길러진 사람의 포스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경험은 없는데 감투정신만 지나쳐, 자신의 용맹을 앞세워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는 설정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다 전투경험을 겪으며 차차 성장해간다는 설정.



- 엄태웅이 살 길은 단무지 -


지금처럼 우유부단한 캐릭터로는 시청자를 이성적으로 납득시킬 수도, 감성적으로 매력에 빠지게 할 수도 없다. 주인공이 매력이 없으면 감정이입이 발생하지 않고, 그러면 대중흥행물엔 재난이 닥친다.(거꾸로 작가주의 작품은 일부러 감정이입을 차단하기도 함)


미끼작전에 자원하는 순간에도 단호한 알천과 눈빛이 흔들리는 김유신이 대비됐다. 작전이 종료된 후에도 알천과 김유신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마지막 탈출작전을 앞두고 석품이 덕만을 죽이려 할 때조차 먼저 나선 건 알천이었다.


김유신은 알천을 따라 행동에 나섰고 다른 조연들도 행동에 나섰다. 그건 김유신의 행동이 알천에 종속된, 즉 조연 수준이라는 얘기다. 눈빛, 표정, 목소리, 전체적인 분위기에 이어 행동까지 비주체적이라면 존재감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간다.


심지어 <선덕여왕>이 조연들이 빛나는 작품이라는 찬사까지 있었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허공의 연기가 되고 조연들이 빛나는 작품은 절대로 대중흥행물이 될 수 없다. 물론 엄태웅은 투톱이 아니기 때문에 <선덕여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만 본인의 이미지엔 타격이 갈 것이다.


엄태웅은 눈빛, 표정, 어조 모든 것에 단호함과 의지를 담아야 한다. 그래야 김유신 캐릭터도 살고 엄태웅의 포스도 살아난다. 워낙 포스가 빈약하다보니 11회 막판에 엄태웅이 부대를 지휘했어도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엄태웅은 보다 ‘단무지’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가는 엄태웅의 행동에서 수동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스타 엄태웅이 무명이었던 알천랑 이승효에게 뺏긴 영웅적 존재감을 되찾아올 수 있다. 주인공이 바로 서야 극이 산다. 또 엄태웅 개인의 추락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엄태웅, ‘야성적인 폭풍간지’까지는 아니어도 ‘의지의 사나이’쯤은 되어야 한다. 흔들리는 눈빛을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