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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소녀시대 SM 얄밉도록 잘한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해야 할까? SM과 소녀시대가 또 치고 나간 느낌이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컴백 무대를 본 소감이 그렇다.


이번 노래는 동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무작정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듣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쉽고, 단순하고, 흥겹고, 쉬운 음악이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고 그간 많이 들어왔던 흑인음악풍도 아니다.


한국의 아이돌들은 대체로 동요 아니면 흑인음악풍을 부르며 인기를 얻었었다. 여기서 ‘동요’라는 표현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1990년대에 외국인들이 한국의 인기가요들을 듣고 말한 것을 옮긴 것이다.


한동안 아이돌은 흑인음악을 한국 댄스음악으로 변용한 복잡하고 생경한 노래들을 불렀었다. 이 기간 동안 광적인 팬클럽을 육성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동시에 아이돌이 장악한 가요계가 국민과 결정적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다시 소녀시대를 필두로 한 아이돌이 동요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국적인 호응이 잇따랐다. 그 동요들을 후크송이라고 부르든, 일렉트로니카라고 하든 분명한 것은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따라 부르며 흔들어댈 수 있는 노래였다는 점이다.


다섯 살 먹은 아이들까지 차트에서 1위를 하는 한국 아이돌의 노래를 좋아했다. 이건 둘 중의 하나다. 다섯 살 먹은 한국의 아이들이 어떤 진화상의 기적으로 인해 거족적으로 성숙해졌거나, 아니면 한국의 가요들이 다섯 살 수준으로 내려갔거나.


당연히 후자다. 사람은 성장에 따라 취향의 수위가 달라진다. 아기 때 즐길 만한 수준이 있고, 어렸을 때 즐길 만한 수준이 있고, 청년기에 즐길 만한 수준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아이돌들의 노래는 좀 심하게 말해서 아기 수준, 정확히 말하면 ‘초딩 수준’에 맞춰져 있었다.


‘초딩 수준’의 명랑 동요에 성인가요판이 점령당한 형국이었던 것이다. 걸그룹 중 이것으로부터 가장 많이 벗어난 그룹이 원더걸스라 할 것이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절반만 벗어났다. 원더걸스가 한 것은 말하자면 ‘동요의 섹시화’라고 할 수 있다. ‘텔미’도 그렇고 ‘노바디’도 그렇고 섹시의 외피를 입혔으나 동요컨셉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카라는 동요 그 자체고, 애프터스쿨은 성인그룹의 동요화, 원더걸스는 동요의 성인가요화, 포미닛은 아직까지 무정체성이라고나 할까. 데뷔하자마자 본좌자리를 넘보는 2NE1 정도가 동요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컨셉이다. 그리고 소녀시대는 동요컨셉의 지존격인 걸그룹이었다.


그런 소녀시대가 처음 동요세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던 것이 ‘지’에서였다. 이때도 섹시논란이 벌어졌었다. 핑클-소녀시대-카라로 이어지는 순진발랄명랑 요정 이미지의 동요와 율동에서 일탈하는 것이 평자들에겐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체는 ‘엇? 이젠 섹시로 가는 거냐?’라고 반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엔 ‘순진 동요’와 ‘막 나가는 섹시’ 두 개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명랑소녀가 퇴물처럼 보이는 막 나가는 섹시로 전락하지 않고도 당연히 거쳐야 할 단계가 있으니, 그건 바로 ‘성숙’이다. 10살 내외의 세상에서 20살 내외의 세상으로 가는 것은 섹시라기보다 성숙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적절하다.


‘지’는 동요에서 완전히 벗어난 컨셉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 초반에 벌어졌던 섹시논란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소원을 말해봐’가 나왔다. 이번 노래는 동요에서 ‘지’보다 더 많이 멀어졌다. 그러자 모든 매체가 ‘섹시’로 반응했다. 섹시는 타락, 상업주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동반한다. 하지만 ‘소원을 말해봐’에서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섹시가 아닌 ‘성숙’이라고 평가해주는 것이 옳다.


‘소원을 말해봐’는 한국인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광하는 ‘소녀 동요’가 아니므로 이전 아이돌 동요들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돌에게 이런 정도의 성인팝을 소화하게 한 SM의 선택은 성공적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으로 소녀시대에겐 단지 명랑한 소녀들 이상의 성숙한 존재감이 생겼다.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카라가 원조 동요로 쫓아오고 원더걸스가 성인풍 국민동요로 추월하자 소녀시대는 동요형 팝인 ‘지’로 응전했다. 그리고 이번엔 예능에서의 소녀시대 염가대세일로 위상이 흔들리는 와중에 성인팝인 ‘소원을 말해봐’와 완성도 있는 퍼포먼스로 치고 나갔다. 누가 때리면 그걸 그 자리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툭’ 치고 나가는 것이다. 시원시원하다. 이렇게 미끈하게 항로를 잡는 SM이 ‘얄밉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소녀시대는 젊다. ‘소원을 말해봐’를 불렀다고 해서 다시는 동요를 못 부르는 것이 아니다. 매체들의 우려처럼 일단 벗었으니 더 벗어야 되고, 성숙했으니 더 진해져야 되고, 이런 식의 외길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찬바람 불 때쯤 다시 이미지를 역변신해 발랄명랑한 동요를 들고 나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땐 똑같은 동요를 부르더라도 유사 걸그룹보다 더 풍부한 느낌, 더 강력한 존재감의 소녀시대가 될 수 있다. 단, 실증을 부르는 소녀시대 예능 막 팔아치우기만은 조절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