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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릎팍 쌀집아저씨 다시 눈물을 주다

 

생각지도 않게 오늘 두 번이나 눈물이 났다. 한 번은 마이클잭슨 장례식을 보며, 그리고 또 한 번은 <무릎팍 도사>를 보면서였다.


마이클잭슨에서의 눈물은 추억과 연민의 느낌이다. 그에 반해 <무릎팍 도사>의 쌀집아저씨 김영희 PD편이 준 눈물은 ‘감동’과 ‘따뜻함’의 성격이었다.


당연히 후자가 더 큰 카타르시스와 여운을 남겼다. 김영희 PD의 양심냉장고 이야기에는 보편적인 감동과, 드라마틱한 극적 흥분이 모두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적이기까지 했다. 단지 흘러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곱씹을만한 의미가 있었다는 얘기다.


1996년 당시 바닥까지 추락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시청률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때의 경쟁작은 이영자의 <금촌댁네 사람들>. 지금으로 치면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합친 듯한 존재감의 화제작이었다.


그것에 맞불을 놓을 전혀 다른 포맷의 작품을 기획하느라 몇날 며칠을 집에도 못 갔다고 한다. 그러다 방송을 열흘 앞둔 어느 날 김영희 PD가 집에 가게 됐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날 따라 그가 행인도 없는 건널목의 신호등 정지 신호를 지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의 양심을 지켰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일 터. 그때 그는 ‘야! 이거다!’라고 생각했단다.



- 감동이 전설을 만들다 -


그저 이 세상이 저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이나 벌이는 개싸움판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들 안 보이는 곳에선 반칙이나 일삼고, 밝은 곳에 나와선 번듯한 사람 행세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짜증만 날 뿐이다.


김영희 PD는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지킬 것을 스스로 지키는 행위가 그 자신에게 작은 이익의 욕망을 뛰어넘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즐거움은 삶을 더욱 살 만한 것으로 만들며, 사회를 더 따뜻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만약 어떤 프로그램이 그런 따뜻한 느낌을 담을 수만 있다면, 그러한 느낌을 시청자가 공유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대박을 칠 것이라고 직감했던 것이다.


그는 양심냉장고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당연히 모두들 반대했다. 그가 제안한 기획엔 ‘자극’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타도, 코미디도, 미녀도, 아무 것도 없었다. 과연 시청자가 무자극 프로그램에 눈길을 줄까?


물론 인간은 자극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1차원적인 자극을 뛰어넘는 더욱 강렬한 감동의 힘.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었을 때의 파급력. 바로 ‘따뜻함’의 힘. 이것은 간과되기 아주 쉬운 덕목이다. 하지만 김영희 PD는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이어진 촬영. 여기에서 이경규의 천재성이 빛났다. 자동차 지나치는 모습만 가지고 웃기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이경규는 그 상황을 최고의 코미디로 만들었다. 이경규의 간절한 중계를 보며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할까?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밤샘촬영 끝에 겨우 신호를 지키는 차량을 만났는데, 그것이 장애인이 모는 경차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각본 없는 드라마는 완성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에 사는 장애인이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양심을 지키는 모습. 그것은 ‘이 썩고 짜증나는 사회’가 아직 지옥은 아니라는 것, 아직은 우리 사회에 선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흐뭇함’과 ‘따뜻함’을 줬다. 동시에 그 선인이 최약자라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이 감동이 1996년에도, 그리고 13년이 흐른 지금에도 눈물이 흐르게 한 힘이다. 이 엄청난 힘은 김영희 PD와 이경규를 전설로 만들었다.


- 따뜻함과 사람 -


김영희 PD는 좋은 PD의 덕목으로 ‘따뜻함’을 꼽았다. 바로 이것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함. 이것이 13년 전에도, 2009년에도 눈물을 만들어낸 힘이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보편적인 가치다.



한국인은 1996년에조차 그 ‘따뜻함’에 열광했는데 당시는 거품경제가 잘 나가고 있을 때였다. 현재는 양극화와 경제위기로 사람들이 더욱 따뜻함을 열망하고 있다. 최근 찬사 받은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무한도전>의 시선에 약자에 대한 따뜻함이 깔려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박2일>이 초대한 박찬호와 보통 사람들, 그리고 직접 찾아간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분들은 코미디도 못했고, 미녀도 아니었고, ‘핫’한 스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분들을 통해 시청자는 ‘따뜻함’을 느꼈다.


얼마 전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나름대로 성공한 스타 MC들을 모아 프로그램을 구성했지만 그 보통사람들이 주는 감동에 대적할 수 없었다. 여기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당대 최고 기획사의 최고 소녀 아이돌을 대거 투입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 참패였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1996년에 찾았던 것, 바로 ‘따뜻함’. 그 보편적인 힘을 잊은 건 아닌가? 인간, 따뜻한 느낌, 흐뭇함, 이런 수수한 덕목들을 놓치고 관성적으로 스타의 자극에만 의지했던 건 아닌가?


팬시적인 ‘때깔’과 스타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인간’과 ‘정’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서 시청자가 ‘따뜻함’과 ‘흐뭇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것은 거품경제시기인 1996년보다 민생불황시기인 2009년에 더욱 빛을 발할 가치다. <무릎팍도사> 쌀집아저씨 김영희 PD편은 그 단순한 이치를 다시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