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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제시카 냉면로또 쟁취하다

 

제시카가 아닌 밤중의 대박을 맞았다. 오랫동안 준비해도 하기 어려운 음원차트 1위를 예능프로그램 이벤트로 차지한 것이다. 번듯한 자기 노래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구설수와 얼음공주 비호감에서도 벗어나고, 소녀시대 속에 묻혔던 존재감도 살아난 3중 로또 잭팟이다.


제시카의 ‘냉면’이 한 음원차트에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누름으로서 ‘팀킬’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게 말할 일은 아니다. ‘소원을 말해봐’와 ‘냉면’은 컨셉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냉면’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녀가 부르는 동요’ 컨셉이다. 반면에‘소원을 말해봐’는 성인팝이다. 팀킬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색깔을 표현했을 뿐이다. ‘냉면’이 더 대중적일 수밖에 없고 <무한도전>의 화제성까지 밀어줬다.


아무튼 한 차트에선 요즘의 대세인 2NE1까지 밀어내며 1위를 했으니 엄청난 대박이다. 제시카는 데뷔 이래 최대의 행운을 낚은 셈이다.



- 행운이 제시카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제시카가 행운을 잡은 것 -


MBC는 최근 일요일 국민 예능 시간대에 소녀시대로 도배를 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근 <오빠밴드>에 티파니가 나왔지만 역시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그러나 유독 <무한도전>에 출연한 제시카가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이를 누가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으랴! 세상은 역시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팬들의 불만을 살 만큼 소녀시대는 예능에서 들이댔는데, 2009년 7월 12일 <무한도전>에서 제시카가 대박을 맞을 거라고는 정말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박명수가 제시카를 선택하고, 원투에게 갈 곡이 제시카에게 돌아가고, 등등의 일들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져 제시카의 행운을 예비했다.


하지만 제시카가 앉아서 로또를 맞은 건 아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라고 가볍게 웃음거리나 준다는 생각으로 임했으면 절대로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준비단계에서부터 제시카는 최선을 다했다. 또 당일 현장이 더위, 썰렁한 분위기, 실수연발의 파트너 등 최악의 조건이었음에도 제시카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이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던 기회를 거머쥔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열심히 한 이정현을 보면 최선을 다 한다고 누구나 행운을 얻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세상은 부조리하니까. 그래도 그런 부조리함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간혹 현실화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금 보여줬다.



- 무한도전이 잡은 시청자의 사랑 -


이번 특집에서 각각의 팀들에 대한 평을 두고 그 기준을 코미디프로그램에 두느냐 음악프로그램에 두느냐 하는 논란이 있었다. 코미디 퍼포먼스가 우선인가 음악적 진지함이 우선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논란이 생길 만큼 이번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애매했다.


바로 그것이다. 그 애매함이 <무한도전>이 뿜어내는 기이한 매력의 본질이다. <무한도전>만의 특징은 개그에도 시트콤식 코미디에도 있지 않다. <무한도전> 정신의 본령중 하나는 바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무대뽀 정신‘ 에 있다. 무대뽀로 도전하다 보면 봅슬레이 선수가 되기도 하고, 스포츠 댄스 선수가 되기도 하고, 에어로빅 선수가 되기도 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정체성이 애매해지지 않을 만큼, 즉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만큼 웃기는 컨셉으로만 일관하면 <무한도전>이 아니다. 시청자는 그런 장난에 열광하지 않는다. <무한도전>은 진짜 선수처럼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그렇게 해서 그것이 단지 예능프로그램 이벤트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 어떤 결과물을 빚어내는 것에 시청자는 짜릿한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이번 듀엣가요제 특집이 시청자의 열광을 얻어낸 것도 코미디와 음악프로그램의 경계를 허물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만약 우스개 해프닝 수준이었으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거기에 현실세상에서의 차트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더욱 짜릿한 느낌을 줬다.


댄스 스포츠를 하든, 에어로빅을 하든, 가요제를 준비하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무모한’ 모습. 그것이 <무한도전>인 것이다.


세상은 부조리하므로 최선을 다 한다고 해서 언제나 호응을 얻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하는 사람에게 그나마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무한도전>이 진심으로 몸을 던질 때 그나마 시청자의 열광을 얻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무한도전>은 이번 특집에 마치 정식가요제처럼 최선을 다해서 호응을 이끌어냈고, 그 속에서 제시카는 마치 자신의 정식 노래처럼 최선을 다해서 행운을 끌어안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냉면’을 흔쾌히 양보한 원투에게 경의를 표한다. 구국의 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