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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윤도현의 러브레터마저 학벌주의 선전하나

 

윤도현의 러브레터마저 학벌주의 선전하나


이번 주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루시드폴이 출연했다. 루시드폴은 최근 방영된 <커피프린스 1호점>의 삽입곡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 언더그라운드 가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가수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아직 낯설다. 그래서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루시드폴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지금 화면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더 풍부한 감상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그 소개의 내용에 있었다. 윤도현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혹시 루시드폴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살짝 부연 설명을 드리면요, 되게 쑥스러우시겠다 내가 할 때, S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스위스 로잔 공대 생명과학연구소 박사과정을 밟고 계시구요“


가수 소개를 하는데 S대가 왜 나오나? S대 출신이란 걸 알고 들으면 그 노래에 대한 감상이 더 잘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자기들이 지금 ‘되게 쑥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굳이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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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이 학벌을 소개할 때 루시드폴이 귀를 막고 있는 모습.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학력은 어떤 사람에 대한 중요한 정보다. 학력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건 단순한 학력이 아니라 간판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판은 사람에 대한 여러 정보중 하나가 아니라 사람 위에 군림하는 기괴한 괴물이다.


누군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고등교육 학력을 소개한다면 전공만을 얘기하면 된다. 출신대는 학력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바로 학벌이라는 현대판 신분제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 신종 신분제는 막대한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교육비 고통을, 정서적으로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깊고 깊은 한을 안겨주고 있는 괴물이다.


바로 그렇게 맺힌 한을 풀려 오늘도 한국인은 학벌세탁을 하거나, 학벌거짓말을 하거나, 자식에게 좋은 학벌을 안겨주기 위해 아이를 몰아세운다. 문화연예계마저도 학벌세탁, 학력위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2007년 여름에 밝혀졌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런 식으로 출신대학을 강조하는 한 이 기이한 풍조는 계속될 것이다.


학벌의 실체는 간단하다. 학벌이란 고등학교 다닐 때의 입시석차다. 대체로 국영수 성적이다. 예체능계 같으면 사교육비의 규모와 특기대회 수상실적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영수 성적이든 특기대회 수상이든 부모의 재산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서울대 입학생 중 80% 이상이 자신을 중류 혹은 상류층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5명 중 1명이 특목고 출신인데 이 비율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서울대 출신이라는 건 국영수 입시공부를 유난히 열심히 했거나, 예체능 사교육에 돈을 많이 썼거나, 집안이 유복하거나, 특목고를 나왔다는 걸 의미한다.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과 문화적 재능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 문화-언론계는 일류대 출신을 우러러 본다. 그리하여 문화인들 스스로가 일류학벌 콤플렉스에 빠져 한국 최고의 예술인들이 뒤늦게 학벌세탁을 위해 대학원에 등록하거나 아예 거짓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황당한 나라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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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출신 연예인들은 수시로 언론을 통해 조명 받는데, 그들에겐 항상 ‘지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번 주 <무한도전>에서도 김태희가 언급되며 똑똑하다느니, 완벽하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왔다. 얼굴도 예쁜데다, 서울대까지 나왔기 때문에 ‘완벽’하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우스운 건 김태희가 배우라는 사실이다. 김태희의 연기력이 그의 학벌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거의 공인된 사실이다. 배우가 연기를 못해도 얼굴 예쁘고 학벌만 좋으면 완벽하다고 티비 프로그램에서 국민들에게 광고를 하는 것이다. 이러니 학벌사회가 어느 천년에 치유될 수 있을까?


얼마 전 방영된 <스타킹>엔 한 벨리댄서가 출연했었다. 그 댄서가 이화여대생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스튜디오엔 ‘패닉’ 사태가 일었다. 젊은 남자 출연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광란의 구애’를 펼친 것이다. 그 장면엔 아래와 같은 자막이 깔렸다.


‘미모에 지성까지... 난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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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설명한 것처럼 대한민국 일류대와 인간의 지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상관이 전혀 없진 않겠다. 상식적으로 유추하건대 일류대와 인간지성은 상호 대립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입시공부, 입시성적은 인간지성의 주체적, 창조적 능력을 말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 방송언론은 일류대와 지성을 연결시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일류대 학벌이 진정 관계를 맺는 것은 지성 따위가 아니라 권력이다. 한국 사회는 이화여대 사위들이 지배한다는 말도 있다. 과거에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부부동반으로 모이면 이화여대 동창회가 된다는 말도 있었다. 대체로 한국의 고위층들이 모이면 4개 대학의 동창회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제 17대 국회가 출범했을 때는 서울대당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국회의원 서울대 동창이 국회 과반수 정도였으니까. 그들이 과연 한국 최고의 지성적 집단일까?


<스타킹>에서 한 출연자는 ‘어머니의 며느리 이상형이 이화여대 출신자’라고 말했다. TV는 그 대사를 친절히 자막으로 처리해 전 국민이 귀로, 눈으로 듣고 보도록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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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수록 전 국민은 자기 딸을 이화여대생으로, 아들을 이화여대 사위로 만들기 위해 입시경쟁에 몰아붙이게 된다. 한국 사회 결혼시장에서 남성에게 부과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학벌이고, 비슷한 학벌끼리 결혼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화여대 사위가 되기 위해선 아들의 학벌이 이화여대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TV 프로그램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학벌 문화를 부추겨도 윤도현에 대한 나름의 신뢰가 있었다. 게다가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버라이어티 예능도 아니고 순수 음악 프로그램 아닌가. 그런 데에서까지 윤도현의 입으로 ‘S대’가 거론되는 풍경을 봐야 하는 현실인가.


그렇지 않아도 골수에까지 사무친 서울대병에 걸린 국민들이다. 나라가 망해간다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대 논술에 전국 방방곡곡이 춤을 춘다. 공중파는 나라의 병을 부추기라고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방송국 운영진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