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능 음악 칼럼

타이거JK 9시뉴스에 진출하다

 

앨범을 통째로 들어야 그 가수의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고 느끼는 음악감상문화가 한국에서 멸종돼가고 있다.


예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배철수는 요즘 청소년들이 팝송을 안 듣는 것이 가장 안타깝고 고민스러운 일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배철수가 추천한 가수가 비틀즈였다.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핫츠 클럽 밴드‘ 앨범이나, ’애비 로드‘ 앨범에서 싱글을 잘라내 듣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이 앨범들은 앨범 첫 곡부터 차례차례 들어나가야 제대로 노래를 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음악인은 앨범 하나하나 만들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곡들을 구성하고, 수용자는 앨범 전체에 담겨있는 음악인의 창조물을 감상해주고, 이 두 개의 흐름이 서로 상승작용할 때 대중음악은 점차 깊어지며 넓어지게 된다.


그런 정도의 대중음악판이 되어야 못 생기고 예능감이 없는 아티스트라도 음반을 팔 수 있고, 공연장을 가득 메울 수 있게 된다. 또 그래야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불멸의 명곡들이 많이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 타이거JK의 돈키호테 행각 -


타이거JK가 MBC 9시 뉴스데스크에 나왔다. 그 이유가 서글프다. 그가 상당한 분량의 정규 앨범을 냈다는 것이 9시 뉴스가 타이거JK를 조명한 이유였다. 아티스트로서 일반적인 일을 한 것이 뉴스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당연한 일이 주목 받는 뚝심이 되고, 놀라운 용기로 평가 받는 것은 그런 식의 문화가 한국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9시 뉴스는 활동기간이 몇 년 되지도 않는 동방신기의 경우 현재까지 앨범이 무려 48장이 발매됐으며, 빅뱅도 18장이나 발매됐다고 전했다.(동방신기의 경우 일본 싱글이 합산됐다고 함) 


1~2년 간 창조력을 집약시킨 앨범이 아니라 짧게 치고 빠지는 미니앨범으로 승부했다는 얘기다. 흥겨운 노래 한 곡 발표하고, 예능 나오고, 가요프로 나오고, 다시 흥겨운 노래 한 곡 발표하는 패턴이다.


이러면 앨범 전체를 감상하며 느끼는 음악적 몰입은 불가능하다. 어느 날 정규 영화가 사라지고 모든 영화가 CF나 뮤직비디오처럼 하이라이트 모음식으로만 배포된다고 치자. 그때 과연 깊은 울림의 감동이 가능할까?


우리는 하이라이트 모음 같은 싱글들만 들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시장질서인데 타이거JK가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 장장 27곡이 수록된 더블CD를 발표해버렸다. 이건 무모한 폭탄이다. 이런 식으로 음악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래도 타이거JK는 했다.


그래서 9시 뉴스가 화들짝 놀라 이례적으로 그에게 조명을 비춰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냉정하고 똑똑한 기획사들의 수지타산에 의해 좌우되는 한국 가요계에, 전통적인 아티스트의 진정성이라는 희귀한 가치를 몸으로 보여준 타이거JK였기 때문이다.



- 타이거JK의 무모한 도전을 응원한다 -


앨범은 다행히 시장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현재 5만 5천 장을 돌파한 것이다. 여기엔 <무한도전>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탰을 것이다. 이번엔 9시 뉴스가 힘을 보탰다. 타이거JK의 행보는 이렇게 힘을 실어줄 만하다.


타이거JK같은 돈키호테들이 자꾸 등장하고, 그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깨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종종 성공할 때, 그런 모습을 보며 음악인을 꿈꾸는 어린 친구들이 힘을 키울 것 아닌가. 이대로라면 한국에서 음악인을 꿈꾸는 사람은 사라지고, 기획사 오디션을 통해 만능 예능인으로 자라기만을 원하는 아이들로 미어터질 판이다.


타이거JK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쉬워지고 값어치가 없어지는 음악시장에서 한 명이라도 꿈틀거려주면 약간 퍼지지(확산되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힙합을 싫어하지만, 한국이라는 환경에서는 타이거JK의 ‘꿈틀거림’, 무모한 도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굳세어라, 타이거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