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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티아라 데뷔 불쾌했던 이유

 

세상엔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해도 가릴 게 있는 법이다.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치자. 군인 세상이 됐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법원에 가도 판사석에 군복 입은 군인이 앉아있고, 언론사 사장도 군복 입은 군인이고, 9시 뉴스 앵커도 군복 입은 군인이라고 상상해보라.


누구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막 나가진 않는다. 막후에서 그럴 것이라고 모두들 알게 모르게 인지하는 것이라도, 겉으로는 사회의 통념에 맞게 포장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지만 신문사가 대놓고 재벌 만세, 회장님 만수무강하세요, 이런 기사를 내보내지는 않는다는 얘기와도 같다. 그렇게 막 나가는 것은 상황이 도를 지나칠 만큼 심각하다는 걸 의미한다.



- 아무리 음악이 ‘아웃 오브 안중’이라지만 -


티아라라는 걸그룹이 예능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를 통해 데뷔했다. 티아라는 여기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개인기들을 펼치고, 사생활 토크를 했다. 그게 가수의 데뷔무대란다!


지금이 예능 전성시대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수들이 가수활동보다 예능활동에 더 치중한다는 것도 다 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처음부터 대놓고 예능으로 데뷔하는 건 너무 노골적이었다.


가수들이 종합예능인으로 활동하는 걸 새삼스레 문제 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엔 모양새라는 게 있다. 적어도 데뷔는 음악프로그램을 통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그다음에 그 화제성을 타고 자연스럽게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바람직한 구도였다. 뻔한 수순이라고 해도 그렇다.


이렇게 대놓고 가수라는 직종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은, 이미 상황이 그런 상황이라지만, 너무 막 나갔다. 이 무대에서 이들의 음악은 개인기와 사생활 토크 옆에 배치된 한 예능적 요소에 불과했다. 가수에게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된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려져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 기획사 잘 나가는 걸 누가 모르나 -


지금이 기획사 천하라는 것도 다 아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일반 대중이 주요 가수들의 소속사를 외우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게다가 그 소속사들의 사장 이름까지도 외우는 초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수라는 직종이 독자적 예술가로서의 지위는 사라지고, 기획사가 만들어낸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것도 다 안다.


아무리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가수를 예술적 전문인으로, 독자적인 아티스트로 대우해주는 구도가 필요하다. 이게 마지노선이다. 공식적인 무대에서까지 이게 무너지면 가수의 위상은 그야말로 안습이 된다.


<라디오스타>에선 가수가 데뷔하는 무대에서 기획사 사장이 부각됐다. 전화 연결된 사장은 ‘우리 애들 좀 잘 봐주세요’라고 했다. MC는 ‘애들을 이렇게 교육시켜놓고 뭘 잘 봐달란 거예요?’라고 했다. 물론 웃자고 한 소리지만, 가수가 기획사의 상품이라는 걸 공식화하는 자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스타가 사생활 토크를 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소속사 얘기로 번진 게 아니라, 데뷔무대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회사 대표가 자사의 신상을 소개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소속사가 움직이고,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하는 것들은 옛날 같으면 모두 막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이젠 대놓고 소속사가 전면에 나서고 가수는 종속된 모습이 TV에서 공식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이걸 보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다수당이라고 해도 토론하고 표결하는 시늉은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가수의 예술인으로서의 전문성이 실질적으론 와해됐다 해도, 어쨌든 우리가 겉으로라도 지켜야 할 가치임에는 분명하다. 가수의 예능 데뷔, 데뷔 무대에서의 개인기, 기획사 사장의 부각, 이건 너무 막 나갔다.


마지막으로, 데뷔도 안 한 신인이 대뜸 예능 메인 게스트로 나온 것을 보며, 힘 센 기획사 소속이 아닌 이 땅의 수많은 뮤지션들이 가슴을 쳤을 무대였던 것도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