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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작두타는 이경규의 정확한 예측

 

<놀러와> 2008년 결산 특집에 이경규와 김구라가 출연했었다. 그날 이들은 감탄할 만한 입담으로 자신들이 당대의 토크 본좌임을 입증했다. 워낙 화려한 입담을 펼쳐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중의 하나가 됐다.


그날은 주요 예능인들에 대해 이들이 평가하는 설정으로 진행됐다. ‘신정환은 빙하처럼 녹고 있다’는 표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신정환의 부활을 기대한다)


뒤를 이어 2009년 유망주를 지목하는 코너가 이어졌다. 김구라는 김태원을 지목했고, 이경규는 길을 지목했다. 이경규는 김구라가 지목한 김태원에도 동의하면서, 유현상도 거론했다.


정확하다. 김태원은 2009년에 약방의 감초격인 보조진행자로 떴고, 유현상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길은 가장 눈에 띄게 부상하는 예능신인이다. <무한도전>에서 전진의 존재감을 밀어낼 정도다.


길의 경우는 운도 좋다. 열애설이 노홍철에겐 마이너스가 되었지만 길에겐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껄떡대는 이간길‘의 이미지를 박정아와의 순수한 사랑 이미지가 상쇄시켜줬기 때문이다. 열애설로 이미지가 더 좋아지는 경우는 참 드물다. 운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예능에서의 실력이건, 사생활에서의 운이건, 결과적으로 길은 떴고 이경규의 예언은 맞았다. 김구라의 예측도 맞았다. 이들의 ‘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작두 타는 이경규 -


프로그램은 사람에 대한 평가와 유망주에 대한 예측을 주문했다. 주문대로 하던 이경규는 막판에 다른 말을 했다. ‘유망주를 진단하는 것보다도, 앞으로의 컨셉은 아저씨의 전성시대일 것’이라고 트렌드 예측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남성 위주의 방송이 뜰 것이라고 하며 농담반진담반으로 ‘저를 중심으로 해가지고’라고 해서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었다. 당시엔 누구나 그것을 의례적인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경규는 정말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 위주의 버라이어티를 실행에 옮겼다. 철저하게 아저씨 컨셉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먹혔다. 이미 남성 위주였던 <1박2일>에 <남자의 자격>이 가세하면서 <패밀리가 떴다>를 누른 것이다.


요즘 예능의 대세는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이고,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세는 단연 아저씨다. 토요일에 새로 시작된 <천하무적 야구단>도 아저씨 컨셉이다. <무한도전>도 남성 위주다. 일요일로 넘어가면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이 버티고 있으며, <오빠밴드>가 가세한다.



반면에 여성들이 좋아하는 짝짓기 포맷은 거의 사라졌다. <우리 결혼했어요> 하나가 겨우 명맥만 잇는 형국이다. 여성들이 등장하는 <골드미스 다이어리>나 <세바퀴>는 일반적인 의미의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아저씨’는 2009년 예능 트렌드의 핵심 코드 중 하나가 됐다. 이경규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며 그 예언의 실현에 이바지했으므로, 자기충족적인 예언이었다고 하겠다. 트렌드를 읽는 감과 그 트렌드에 직접 참여하는 능력을 모두 과시한 것이다.


요즘 아저씨판이 된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을 보며, 2008년 말 이경규의 예언을 종종 떠올린다. <라인업>을 말아먹고도 그런 예측과 행동을 할 수 있는 판단력과 도전정신이 오늘의 이경규를 가능케 한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