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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죽을 죄 정수근 억울한 누명이었나

 

지난 주에 정수근은 대중의 정서법에 의해 매장당했었다. 음주 난동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9월 1일 오전 한 언론이 ‘정수근이 주점에서 음주 후 웃통을 벗고 난동을 피워 경찰에 신고가 들어왔다’고 보도한 데서부터 사단이 났다고 한다. 다른 언론들도 이 ‘섹시’한 기사를 줄줄이 대서특필했고, 정수근은 패륜아로 낙인 찍혀 대중의 공격을 받았다.


정수근은 그후 결백을 주장했다. 호프집에서는 맥주를 몇 잔 마셨을 뿐이며, 어떠한 소란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괘씸죄로 찍힌 정수근에게 한국야구위원회는 무기한 실격이라는 철퇴를 내렸다. 이미 전과가 있는 그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는 이런 사건이 크게 공론화된 것 자체가 프로야구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를 내렸다는 얘기다. 여기엔 당연히 언론의 보도와 대중의 분노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론재판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애초에 정수근이 술 먹고 난동을 부린다고 신고했던 사람이 말을 뒤집었다. 정수근은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롯데 팬으로서 롯데의 선수인 정수근이 시즌 중에 술 마시는 게 미워서 그런 허위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으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단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는 단지 정수근이 집에 일찍 들어가기만을 바랬다고 한다. 정수근은 술 조금 마시고 갔으며 아무 일도 없었단다. 지금은 일이 커진 데 놀라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는 상태라고 한다. 예전에 차 사고를 당한 후 대인기피증 증세도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안정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다. 그는 만약 이대로 정수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다며 조속한 문제해결을 바라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그냥 단순한 해프닝 정도의 일 아닌가? 이런 일을 가지고, 사단을 낸 언론과 그에 놀아난 네티즌이 우습게 됐다.


유사 전과가 있는 정수근에 음주난동이라는 굉장히 예민한 키워드가 엮인 사건이었다. 이것이 보도되면 정수근은 우리 네티즌 정서상 ‘죽일 놈’이 될 것이 뻔했다. 언론이라면 이렇게 예민하고 위험한 사건을 접했을 때는 보도에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뭔가 일이 터지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보도부터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얼마 전 베라 사태도 그렇다. 베라가 쓴 책의 내용을 파악하지도 않고 대뜸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에 열을 올렸었다.


‘정수근 음주난동’ 기사 장사는 당연히 대박을 쳤다.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그 열기에 놀란 위원회가 정수근에게 무기한 실격 처분을 내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야 다른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사람 죽이는 묻지마 보도와 악플 공세를 반복해야 하나.


신고자를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정수근은, “신고하신 분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쩌나. 말씀을 들어보니 진짜 롯데를 사랑하시는 팬이셨다. 또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하신 게 아니었고 착한 분이더라. 그런 분을 나 살자고 냉혹하게 할 수 없다 ... 그분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 나의 명예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선수협과 함께 알아보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수근이 이런 입장이라면, 한 순간 욱하는 마음에 허위 신고를 한 어느 소시민이 송사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정수근이 당한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까. 언론은 또다시 먹이감을 찾아 배회하고, 네티즌은 떡밥이 주어지면 또다시 앞뒤 가리지 않고 폭풍같은 악플러시를 감행할 것이다.


정수근 사건의 경과를 보며, 차분한 사실 확인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야 성급해도 되지만, 어떤 사람이 퇴출에까지 이르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분노는 사태가 분명해질 때까지 조금 참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언론의 선정적인 ‘떡밥’ 장사는 제발 좀 사라지길.


요즘 툭하면 ‘그만 둬라, 사라져라, 퇴출시켜라’ 등의 끝장을 보라는 여론이 터져 나온다. 무섭다. 냉혹하다. 정이 많다던 한국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