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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2PM 재범이 지은 죽을죄의 정체

 

2PM의 재범에 대한 공격을 애국주의란 코드로 아주 쉽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재범이 한국인의 애국주의를 건드리는 죽을죄를 졌다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한국에서 대중행동이 일어날 때마다 해석의 도구로 등장하는 요술방망이다. 모든 것을 이렇게 해석하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현실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다. 그렇다면 2PM 재범이 지은 죽을죄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국인은 요즘 ‘솔직함’에 열광한다. 과거엔 속으로야 어떠하든 겉으로는 정중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했다. 박중훈쇼는 그런 과거식 토크쇼를 선보였다가 망했다. 요즘엔 리얼 막말로 자신들의 치부나 사생활까지 화통하게 터뜨려야 인기를 얻는다.


솔직한 것을 좋아하는 흐름은 역으로 이중적인 것을 싫어하는 심리와 통한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뭔가 숨기고, 속마음과 다른 얘기를 하고,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것을 증오한다.


모범적인 이미지를 내세웠던 유승준이 뒤통수를 쳤을 때, 또는 조신한 이미지를 내세웠던 어느 여자 연예인이 최음제 혹은 양다리를 걸쳤다는 사건이 알려졌을 때 대중이 격하게 반응한 것은 그 이중성에 의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TV에 나와 밝고 건강한 미소만을 보여줬던 2PM 재범이 한국이 싫다, 곧 떠날 거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그런 이중성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인은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깨끗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여자 연예인이 담배를 폈었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대중이 경기를 일으키는 나라다. 재범의 상스러운 말들도 대중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재범의 글들은 한국인에게 애국이고 뭐고를 떠나 인간적인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 왜냐하면 그건 손님에게 침 뱉는 판매자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판매자가 기분 나쁘게 했을 경우, 손님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간단하다. 불매 선언하면 그만이다. 판매자에게 욕 먹어가면서 매상 올려줄 호구는 없으니까. 결국 대중에게 버림받은 2PM 재범은 퇴출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재범에게 이중성과 배신감을 느끼고, 모욕감을 느낀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재범이 정말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대중의 버림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니라면?



1. 한국이 싫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재범이 한국이 싫다, 한국이 역겹다, 한국인은 이상하다 등의 말을 했다고 보도가 돼서 분노가 터졌다. 그런데 이건 과거에 친구와 사적으로 푸념한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반항적인 소년이 한국에 와서 팍팍한 연습생 생활을 하며 모든 것을 통제받을 때 느낀 괴로움을 별 생각없이 토로한 것이다. 이런 정도 수준에 모욕감이나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2. 상스러운 표현


재범은 미국 힙합문화를 즐기는 어린 학생으로서 그 세계에서 통하는 비속어나 은어들을 일상어로 사용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현재 다른 세계로 왔다. 그가 지금 세계로 와서까지 이전 세계의 언어를 고집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는 현재 별 문제없는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이전 세계에 있었을 때의 친구와 이전 세계의 화법으로 대화를 나눈 것을 가지고 이중성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건 고향 친구와 사투리로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하다.


성적인 뉘앙스는 그 사투리의 일반적 특징일 뿐이다. 번역할 가치도 없다. 누가 ‘좆까’라고 했다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있으면 바보 아닌가. 한국 기자들 중 일부는 ‘빨아준다’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데 이런 것도 직역하면 황당해진다.


3. 돈만 벌고 뜰 거다


재범이 한국에 온 것은 비즈니스 때문이며, 곧 뜰 거라는 말을 비교적 최근에 남긴 것이 또 문제가 됐다. 여기에도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말이다. 유현상이 트로트를 부른 것도 비즈니스 때문이었다. 내가 옛날에 알았던 락밴드 친구들은 비즈니스 때문에 팝밴드로 변신했다. 상당수의 가수들이 이런 경로를 밟고 있다.


미국에서 자유롭게 힙합 비보잉을 즐기던 친구가, 한국 기획사의 통제를 받으며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제복을 입고 활동할 이유가 비즈니스 말고 무엇이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말해 돈이다. 그들은 돈을 벌고 스타가 되기 위해 굴욕을 참으며 연예계의 상품으로 변신한다. 여기에 새삼스레 놀랄 필요는 없다.


락밴드 출신인 노라조의 이혁은 자신들의 밴드 이름도 창피해하고,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도 창피해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돈 때문에. 대중은 이혁이 스스로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오로지 돈 때문에 하는 노라조 활동을 지켜봤다. 그렇다고 이혁에게 분노할 필요가 있을까?


이혁의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 것도 아니다. 데뷔 5년차가 된 지금 이혁은 편안해보인다. 처음엔 너무나 창피하고 불만스러웠지만, 막상 노라조 활동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으니 노라조에 자부심도 생긴 것 같다. 대중의 박수가 자신들을 변화시켰다고 고백하는 가수들은 많다.


사람은 당연히 변한다. 재범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함께 지낸 친구와 어렸을 때 그와 공유했던 정서대로, ‘나 곧 성공해서 금의환향한다’라고 허세를 떤 것이 그의 전부를 규정할 순 없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재범에게 배신감이나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좀 ‘오바’라고 생각된다. 고생스러운 연습생 생활을 거쳐 날개를 펼치자마자 내동댕이쳐진 재범이 안 됐다. 우리에게 여유가 더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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