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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한국판 빌보드를 개탄한다

 

빌보드 코리아 차트가 탄생한다고 한다. 한국의 연예인제작자협회와 미국의 닐슨 비즈니스 미디어는 이외 관련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빌보드 코리아를 설립했다고 한다.


연제협 회장은 빌보드가 세계적으로 존경 받고 신뢰받는 세계 최고의 대중음악 브랜드라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빌보드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음악차트가 등장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연제협 회장이 남의 나라 브랜드를 찬양하는 것에서부터 참담하다. 그리고, 그런 남의 나라 브랜드를 통해야만 우리에게 공정한 음악차트가 생긴다고 말하는 대목은 더욱 참담하다.


한국인은 바보인가? 한국인이 미국인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녀야 하는 반편이들인가? 왜 우리들끼리 우열을 가리는 우리 차트를 만드는 데 미국의 서비스를 통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러다가는 한국판 에미상, 한국판 아카데미상, 한국판 그래미상도 생기게 생겼다. 우리끼리 순위 정하고 상 줘봐야 웃음거리만 될 뿐이니, 공정한 객관성을 위해서 세계 최고 브랜드인 미국 시상식의 공인을 받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우리끼리 정하는 순위가 형편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 연예계에서 순위라든가, 시상의 공정성이 무너진 것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다. 부족하면 우리 스스로 채워야 한다. 왜 손쉽게 선진국의 손을 빌리려 하나?


한국 대통령 선거에 모두가 인정하는 공정성이 생긴 것이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나서였다. 그전에, 아무도 한국 대선을 신뢰하지 않았을 때, 하루빨리 우리 대선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한국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한국 대통령 선거를 미국에게 관리해달라고 했다면?


당연히 이런 황당한 일을 주장했던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엄연한 자주 국가이니까. 객관성이 있건 없건, 공정성이 있건 없건 모두 우리 내부 사정일 뿐이다. 남의 손을 빌릴 이유가 없다. 죽이 돼든 밥이 돼든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하고, 선진적인 수준으로 높여나가는 것도 우리의 몫일뿐이다.


그 과정이 힘들다고 남의 손을 빌려 손쉽게 해결하려는 자세로는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영원히 선진국에 기대는 마이너 신세가 될 것이다.


최근 우리 대중음악의 표절에 대해 논란이 크다. 이에 대해 어떤 곡 하나가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선진국 음악 참고하기’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자연스럽게 참고하다보니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비슷한 곡들이 자꾸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요즘 매서운 질책이 이어지고 있다. 선진국의 유행을 수입이나 하는 자세로는 영원히 문화독립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차트도 그렇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계속해서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안 되면 선진국 베끼자? 부족하면 선진국 것 수입하자? 이런 식이면 발전할 수 없다.


미국을 세계 제국으로 만든 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다. 이것을 소프트파워라 하여, 하드파워인 군사력 이상의 권력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많다.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빌보드 차트 등은 미국의 패권을 상징하는 이름들인 것이다.


그들이 자기 돈을 들여서 한국에 상륙하려 해도, 우리 토종 제작자들이 힘을 합쳐 막아야 할 판에 먼저 저쪽에 손을 벌리며 백기투항을 하다니. 이게 될 법이나 할 일인가?


연제협은 빌보드를 통해 우리 차트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기고, 우리 대중음악이 해외로 진출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빌보드에 기대서 작은 이익을 얻어 봐야, 궁극적으로는 주체성 없이 미국의 그늘에 안주한다는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곡을 만들 때도 외국 것을 참고하고, 앨범 자켓도 외국 것을 참고하고, 가수 스타일링을 할 때도 외국 것을 참고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도 외국 것, 게다가 이번엔 차트도 외국 것. 이러고도 독자적인 문화생산국으로서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