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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꿀벅지’, 양지로 잘못 나온 수컷들의 뒷담화

 

언제부터인가 허벅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유이의 등장 이후 이런 경향이 강해졌다. 그 전에도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여자의 허벅지에 대해 논하는 일은 있었고, 우리나라 여자 연예인이 미국 팝가수 허벅지가 부럽다고 발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담론장에서 여성의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품평하지는 않았었다.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다. 누구나 면접관이 되어 면접을 본다면 그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야, 이 여자 진짜 예쁘다.’

‘이 여자는 좀 아닌데...’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건 자유이지만, 자기들끼리 뒤에 가서 사적으로 이런 얘기들을 나눌 수도 있지만, 공식석상에서 이런 내용을 입 밖에 내놓을 수는 없다. 만약 면접관들이 이런 식으로 드러내놓고 외모를 품평한다면(그것도 성적으로), 한국사회는 대단히 추악해질 것이다.


과거에 노예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에서 백인들이 노예들의 외모를 드러내놓고 부위별로 조목조목 품평했었다. 한 해방된 노예가 쓴 글을 보면, 자신의 외모가 공개적으로 품평당할 때 얼마나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껴야 했는지가 표현돼 있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물건과 같은 상품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위별로 품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후 인간사회는 모든 인간에 대해, 특히 약자인 여성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외모를 과도하게 드러내놓고 성적으로 품평하는 것을 삼가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부임한 여선생님은 미모가 출중하시고~’ 따위의 표현이 사라진 것이다.




연예계는 일반사회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외모와 섹시함을 파는 곳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켜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긴장이 풀려 선을 넘기면, 공식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부위별 품평하는 야만의 시대로 한 순간에 회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봤을 때, 최근 허벅지의 대두는 뭔가 아슬아슬한 감이 있었다. 유이가 등장한 이후 ‘허벅 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여자 아이돌 허벅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더니, 티파니가 허벅지 미인으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화제를 모았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허벅지가 점점 화두가 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꿀벅지’라는 말이 나타났다. 꿀과 허벅지의 조합은 대단히 노골적인 표현이다. 재범이 게이라든가 ‘빨다’ 등의 표현을 썼다가 맹폭을 당했는데, 그런 일상적인 비속어에 비해 ‘꿀벅지’의 자극성이 훨씬 강하다.


또, 재범이 쓴 비속어들이 불특정다수를 향해 일반적으로 쓰이는 관행화된 표현임에 비해, ‘꿀벅지’는 정확하게 여성 허벅지의 성적 대상화를 의미한다는 점에 있어서 훨씬 노골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단어가 최근 들어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원래 네티즌들이야 아무 말이나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니까,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나도 일반인의 입장에선 별별 말을 다 쓰고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그렇게 일반인 사이에서 이런 단어가 유행될 때 매체가 그 단어를 인용해 ‘꿀벅지’라고 쓰는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오늘 기사들을 보다 놀란 것은, 언론 기사 제목에 ‘꿀벅지’가 따옴표 없이 일상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허벅 유이’에서 ‘꿀벅지’의 일상화까지 몇 개월밖에 안 걸렸다. 놀라운 속도다.


네티즌들이 쓰는 것과 언론 기사 제목에 쓰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네티즌이 게시판에서 쓰는 것이 면접관이 속으로 상대방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면, 언론이 따옴표 없이 이 단어를 쓰는 것은 면접관이 드러내놓고 상대의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수컷들끼리 하는 뒷담화가 공식화된 것이다. 아무리 솔직한 게 유행이고, 섹시코드가 유행이라지만 이건 너무 나갔다. 선을 넘어간 것이다. ‘꿀벅지’는 다시 따옴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음지에 있어야 할 말이 양지로 잘못 나왔다. 이런 단어는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트렌드 인용 이상의 일상어로 남용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