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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하땅사, 독한 설정이면 웃기나?

 

MBC의 새 개그프로그램 <하땅사>가 드디어 공개됐다. <개그야>가 참담하게 종영된 이후 비장한 각오로 웃겨주겠다고 해서 관심을 모았던 프로그램이다.


모습을 드러낸 <하땅사>는 물량공세 버라이어티와 실시간 성적공개라는 독한 설정을 섞은 포맷이었다. 이경실, 박미선, 지상렬 등이 MC로 가세하고 스튜디오에 수많은 개그맨들이 앉아있는 대규모 버라이어티로서, 그 자리에서 바로 승패가 갈리고 폐지코너까지 결정되는 비정함이 특징이었다는 뜻이다.


확실히 고민은 많이 한 것 같다. 투자도 많이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웃길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현재로선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에서 MC들이 대화를 나누며 개그 코너를 소개하고, 현장에서 관객으로서 리액션을 보여준다는 설정은 <코미디쇼 희희낙락>에서 이미 시도했었다. <하땅사>는 그것을 더욱 대규모로 키웠을 뿐이다. 관객들이 개그의 성적을 그 자리에서 매긴다는 설정도 <코미디쇼 희희낙락>에서 이미 선보였었다.


명절 특집 이벤트의 기본적인 포맷이기도 하다. 연예인들이 MC들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스튜디오에서 대결을 펼치는 모습은 명절마다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인 것이다. 이런 식의 구도가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서 웃기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코미디쇼 희희낙락>에서 증명됐다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중요한 건 본질이다. <하땅사>는 개그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예능 버라이어티적 설정이 어떻게 되든, 개그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이 살아야 MBC 개그 프로그램이 산다. 그런데 대결 버라이어티 구도로 진행되는 형식은 본질을 깎아먹을 가능성이 있다.


시청자가 각각의 코너에 몰입해야 웃음의 조건이 형성된다. 그런데 코너 사이사이에 스튜디오 대결이 끼어들면 몰입이 끊기게 된다. 두 팀이 자기들 것이 더 웃기다며 코너를 소개하는 것도 문제다. 이러면 보는 사람이 심사위원의 자세가 된다. 몰입이 아니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평가는 웃음의 적이다.


단판에 결정되는 대결의 구조상 각 코너들이 재치와 자극성 위주로 짜일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아무리 웃긴 사람이라도 재치와 자극성만으로 계속 웃길 수는 없다. 하나의 이야기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캐릭터들이 살아나야 매순간 터지는 웃음이 없이도 몰입이 이어질 수 있다. 짧게 짧게 끊어가는 대결 버라이어티 구도로는 이야기 형성이 힘들다.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는 새로운 시도라며 내레이션을 선보였었다. 그 시도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내레이션이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일요일밤에>의 <대망>도 PD가 직접 끼어들었다가 실패했었다. 역시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땅사>의 구도도 이런 식으로 몰입을 방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MBC는 그동안 일요일 예능 재앙을 겪으며 새로운 코너를 계속 선보여 왔다. 대체로 이 코너들에선 대규모라는 것과 독하다는 특징이 나타났었다. 유명 MC들이 대거 투입돼 그야말로 ‘개고생’하는 버라이어티라든가,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대는 <노다지>같은 것을 계속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이 단체로 나와 극단적인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다. 규모를 키우고 설정을 극단화하는 데에만 매달리는 건 너무 안일하다. 이번에 <하땅사>도 그렇다. 아주 많은 개그맨들을 등장시키고 현장에서 폐지코너를 선정한다는 독한 설정을 승부수로 띄웠지만, 그런 것들은 웃기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는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오히려 방해될 가능성까지 있다.



다시 강조하건대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하땅사>의 경우는 개그 코미디 프로그램이므로 개그 코너가 살아야 한다. 외형적인 설정은 그 다음 문제일 뿐이다.


<개그야>가 망한 건 공개코미디라는 설정 때문이 아니었다. 공개코미디라는 설정 자체가 문제라면 <개그콘서트>는 왜 승승장구한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MBC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설정이 아니다. <개그야>는 개그 코너의 빈약함 때문에 망했다. <개그콘서트>와 확연히 대비되는 엉성함이었다. 따라서 <하땅사>가 살기 위해선 코너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대결 구도라든가, 버라이어티적 설정, 현장에서 폐지코너를 결정하는 것 등으론 <하땅사>를 살릴 수 없다.


<개그콘서트>는 우리 사회, 우리 삶에서 웃음을 길어 올린다. ‘분장실의 강선생님’도 그렇고, ‘소비자 고발’이라든가 요즘 ‘남보원’도 그렇다. 모두에게 ‘아 맞아 정말 그래’라는 공감을 느끼게 하면서 통렬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에 <개그야>는 재치나 패러디에만 기댔다가 실패했다. 모습을 드러낸 <하땅사>도 재치 경연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정만 바뀌었지 코너 자체는 <개그야>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셈이다.


지금처럼 스튜디오 재치 경연장으로만 이어진다면 <하땅사>의 미래는 어둡다.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코너를 짜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사회의 단면, 인간의 단면을 통렬하게 묘사하는 코너들만 나온다면, 설정이야 어떻든 <하땅사>는 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설정을 아무리 바꿔도 불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