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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아이리스, 태삼 함정 피할까

 

 <아이리스>의 관전 포인트는 아주 많다. 일단 이 작품이 지루한 수목극의 침체기를 끝낼 수 있을 지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올해 들어 월화드라마에서는 <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 <선덕여왕> 등의 화제작이 잇달아 터졌지만 수목극은 조용하다. 15% 내외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하는 상황이었다.

절대강자가 없는 무주공산으로, 수목에 편성되는 작품에겐 언제나 시장을 장악할 기회가 열려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야말로 ‘줘도 못 먹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아이리스>는 과연 이 지루한 수목극 침체기를 깨고 <선덕여왕>과 함께 양강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까?

분위기는 좋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맨땅에 헤딩>은 계속해서 맨땅에 헤딩만 하는 중이고, <미남이시네요>도 전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리스>의 편성운은 올해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이 조금만 받쳐주면 30% 선까지는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 대작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한국에서 외국 로케나 액션이 가미되는 대작을 만들면 대체로 실패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영화는 최근 그런 징크스가 사라지는 징후가 보이는데 드라마는 여전했다. <백야 3.98>부터 <로비스트>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드라마의 본연인 이야기가 규모에 짓눌리는 모습이 나타났던 것이다. <태왕사신기>도 후반부에 이야기가 급격히 무너지는 한계를 노출했다. <아이리스> 바로 전에 방영됐던 <태양을 삼켜라>도 아프리카와 미국을 넘나드는 대작이었지만, 볼거리 전시에만 급급하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사람은 돈이 있으면 멋지게 쓰고 싶고, 화려하게 썼으면 과시하고 싶어진다. 바로 그것이 블록버스터의 덫이다. 돈 많이 썼다고 자랑하는 샷들을 남발하느라 이야기의 치밀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아이리스>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정말로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한류 기획극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류 붐이 나타난 이래 한국 대중문화산업계는 그 단물을 손쉽게 빨아먹기에 급급해왔다. 그 방법은 한류 스타 최대한 이용하기다. 작게는 한류 스타 팬사인회 같은 행사들이 있었고, 크게는 한류 드라마, 한류 영화를 기획하는 것까지 있었다. 해외에서 한류 스타로 이름이 난 배우들을 내세워 영화와 드라마들을 만든 것이었는데 대체로 실패했다. 작품의 질에 집중하지 않고 한류 스타의 상품성에만 기댔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행태가 이어지자 한류 자체의 힘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병헌은 일본에서 <지아이조> 제작진이 마치 마이클잭슨의 인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하며 놀랐을 정도의 한류 스타다. 그런 점에서 <아이리스>는 한류 기획극으로 분류될 수 있다. 과연 그간의 한류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건 ‘이병헌의 <아이리스>’로 남느냐, 아니면 ‘<아이리스>의 이병헌’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에서 갈릴 문제다. 결국 작품 자체의 힘이 관건인 것이다.


 무거운 남성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올해 성공한 작품들은 모두 화사하거나, 코믹하거나, 막장이거나,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작품들이었다. 반면에 놀라울 만큼 잘 만들었던 <친구, 우리들의 전설>같은 수작은 실패했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빛났던 <남자이야기>도 실패했다. 한국인은 무거운 것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이리스>가 이런 트렌드를 끝내고 굵은 획을 그을 수 있을까? 또, 한국형 첩보액션극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이런 장르는 미드의 몫이었고 한국 드라마는 사랑싸움이나 해왔다.



- 태삼의 함정만 피한다면 -

 지금까지 많은 것을 열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 대작이고, 한국 드라마로서는 특별한 작품이기 때문에 여러 지점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입부가 공개된 지금 <아이리스>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을까?


 적어도 도입부에서 이 작품은 규모에 짓눌리지 않았다. 액션과 이국 풍물을 화려하게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면서도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세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규모와 볼거리와 감정의 서정성이 제대로 결합되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가 그 모범을 보인 바 있다. <아이리스>는 도입부에서 그런 가능성을 보였다. 중반부에 길을 잃지 않고 이야기의 집중력을 계속 이어간다면 후반부의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겠다. 위성까지 이용한 입체적 액션을 선보인 것도 첩보액션으로서 성공적이었다. 미드에 필적할 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뛰어넘은 건 확실했다.


 <아이리스>가 절대로 가선 안 될 길을 <태양을 삼켜라>가 확실히 보여줬다. 미국에서 스트리퍼와 서커스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아프리카에선 총격전을 보여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세 젊은이의 감정선은 허공에 날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길만은 피해야 한다. 아무리 총격전이 난무해도 이야기와 감정선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규모가 인간을 삼키는 사태를 막을 것. 이것이 <아이리스>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