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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하이킥 신세경, 러브라인까지 아프다니

 

역시 <지붕 뚫고 하이킥>, 독하다. 작심한 것 같다. 가볍게 가는 시트콤이니만큼 러브라인은 달달하게 시작될 걸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지붕 뚫고 하이킥>의 본색이 드러나며 신분차이로 인한 갈등과 상처가 차차 그려지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러브라인조차 대뜸 아프게 시작했다. 관심을 모았던 황정음과 신세경의 러브라인 중 하나가 49회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는데 그 정서가 설레임이나 로맨틱이 아니라, 서글픔이었던 것이다. 시트콤 러브라인이 슬프게 시작하다니, <지붕 뚫고 하이킥>이 더욱 무서워진다.


49회에서 신세경은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지훈에게 드디어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그녀는 지훈을 생각하며 따뜻한 꿈에 젖는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은 냉정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세경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세경은 더부살이 부엌데기 신세의 무전무식자일 뿐이다. 부모, 재산, 능력, 학력, 학벌,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처지인 것이다. 49회는 온 집안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신세경의 현실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그녀의 현실과 그녀의 꿈이 대비되면서 신세경의 사랑은 점점 서글퍼지기 시작했다.(아래에 스포일러 있음)



지훈을 만나러 가며 세경은 평소와는 달리 한껏 멋을 낸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기도 했다. 마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마지막에 안성기를 만난 황신혜 같았다. 그리고 지훈의 마음의 증표와도 같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그녀가 지훈을 보는 눈빛은 일정 부분 동경의 빛깔을 띠고 있다. 그것은 세경의 현재 처지에 비해 지훈이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훈이 읽는 외국어 원서를 보며 그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실감한다. 그녀는 점점 굳어진다.


그리고 지훈의 멋진 여자 후배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무참함을 느낀다. 비록 자신이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속으로나마 지훈을 좋아하고 지훈에게 뭔가 기대까지 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게 손인사를 했으며 그와의 만남을 위해 옷까지 차려입었다는 것들이 모두 그녀를 스스로에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게 만든다.


‘아 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 감히 내 주제에...’ 세경의 무참한 표정에선 이런 독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세경은 지훈의 우산을 내려놓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초라하게 나선다. 혼자서 사랑니를 빼러 간 세경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다시 돌이켜 봐도 무섭다. 이건 시트콤이 아니다. 거의 베스트극장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야기였다. 배우 신세경은 이 49회 에피소드가 부녀상봉 에피소드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선 그럴 수도 있다.



부녀상봉 에피소드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면에 49회 사랑니 에피소드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프진 않았다. 하지만 부녀상봉 에피소드보다 더 처연한 서글픔이 있었다.


부녀상봉은 세 부녀가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비록 물리적인 환경은 비참하지만 그 부녀의 마음만은 환했다. 반면에 사랑니 에피소드에서 세경은 철저히 혼자다. 그녀의 상처를 달래줄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보고 있으면 그저 아프기만 하다.


신세경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웃음보다는 아픔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모처럼 시작되는 러브라인인데 밝은 캐릭터인 황정음이 아니라 신세경에서부터 시작한 것에서도 그렇고, 신세경의 러브라인답게 아주 확실하게 아픈 느낌으로 그려진 것에서도 <지붕 뚫고 하이킥>의 고집이 느껴진다.


요 근래 드라마를 보다가 울어본 적도 없고, 드라마의 러브라인을 보며 마음이 아픈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사태가 다 시트콤을 보다 벌어지다니. 그렇다고 안 웃기는 것도 아니다. 웃기고, 울리고, 마음을 아프게 하기까지. <지붕 뚫고 하이킥>의 괴력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