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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정준하의 너무나 안타까운 무신경

 

정준하가 최근 논란에 대해 ‘억울하고 속상해’라고 말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편집으로 인해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그날의 분위기는 사실 좋았으며, 이번도 그렇고 예전에도 여러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를 때마다 속상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몰고 가는 분위기에 억울하고 답답했었다고 한다.


이 인터뷰 기사를 보는 순간, 제3자인 내가 답답하고 속상했다. 정준하는 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일까? 왜 다 끝난 일의 봉인을 다시 열어 비난의 표적이 되길 자청하는 것일까? 마치 김태호 PD와 <무한도전>팀이 기껏 상황을 정리해놓고, 정준하에게 ‘쉴드’를 쳐줬는데 정준하가 그것을 깨고 나와 상황을 다시 엉망으로 만든 것같은 모양새다. 실로 안타깝다.


<무한도전> 뉴욕 식객편 1회에서 ‘쩌리짱’이 일으켰던 파란은 2회의 천재적인 패러디송 마무리로 다 끝난 일이 됐었다. 2회 마지막에 보인 명 셰프의 환한 미소도 기분 좋은 마무리에 일조했다. 정준하는 구원 받았다. 그럼 그것으로 된 것이다.



뉴욕 식객편 1회에서 나타난 정준하의 행동은 보는 사람을 대단히 불쾌하게 했었다. 뻔뻔, 적반하장, 고집, 무례, 답답함 등으로 뒤범벅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것이 다행히 2회의 해피엔딩과 코믹 패러디로 쿨하게 마무리 된 것이다.


그걸로 다 끝난 일을 왜 다시 들쑤셔 불쾌한 기억을 되돌리나? 정준하의 당황스런 무신경이다. 기자가 그때 일에 대해 질문을 하더라도 정준하가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정준하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족했다.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드려 죄송했다. 다음부턴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머리 숙여 드린다.’


이러면 정준하에게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었다. 안 그래도 뉴욕 식객편 2회의 해피엔딩으로 인해, 1회의 불쾌한 대립이 이야기의 구조상 전개, 위기, 반전, 대단원으로 이어지기 위한 의도된 편집이었을 것이라고 모두들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이때 정준하가 ‘비록 버라이어티 속 캐릭터의 모습이긴 했으나, 어쨌든 나로 인해 시청자들이 불쾌했으니 사죄 드린다’고 하면 정준하는 대인배가 되고 불쾌했던 기억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반대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억울했다고 하는 것은, 정준하를 보며 불쾌해했던 시청자들을 소인배로 모는 것이고, 불쾌하고 짜증났던 기억들을 되살려내는 일이 된다. 어떻게 이렇게 최악의 구도를 자청해서 만드는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뉴욕 식객편 1회의 이미지 속에서 정준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다. 만약 그때의 일에 대해 반대 증언을 누군가 한다면 그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즉 명 셰프이거나 혹은 증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 혹은 제작진이었어야 했다. 다 된다. 다 그때의 분위기에 대해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단 한 사람만 안 된다. 바로 정준하다. 정준하가 나서서 왈가왈부 따지면 시청자는 ‘아, 그랬구나. 우리가 잘못했었구나’라고 느끼는 게 아니라 짜증만 날 뿐이다.



안 그래도 팀원들과 제작진의 도움으로 정준하가 1회에서 줬던 불쾌감이 사라진 모양새였기 때문에, 정준하에게는 약간의 민폐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이번에 자기 자신이 다 끝난 일을 거론하는 바람에, 팀원들이 기껏 정리해준 것을 다시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민폐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만약 패러디송에서 시청자들이 편집을 모른다, 캐릭터 가지고 오해한다 등의 푸념을 했다면 사람들이 호평했을까? <무한도전>은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패러디송에선 잘못했다, 미안하다, 후회한다 등의 내용만 나왔었다. 그런 다음 바로 다음 주에 나온 정준하의 일성이 ‘죄송하다’가 아닌 ‘억울하다’라니, 패러디송의 호감마저 깎아먹는 일이다.


정말 안타깝다. 모두에게 웃음을 주며 잘 마무리된 일을 왜 다시 들쑤시나. ‘죄송하다’ 한 마디면 다 지나갈 일이었는데 말이다. 진흙길을 자청하는 정준하가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이번 일이 정준하의 마지막 무신경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