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드라마 불한당 수목대전에서 솟아올랐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월화 사극격돌은 진작에 이산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요즈음엔 이산마저 느슨해지는 기미가 보여 월화 미니시리즈는 맥이 빠졌다. 반면에 수목은 살벌한 전장이다. 먼저 시작한 뉴하트와 쾌도 홍길동, 그리고 불한당의 3파전이 팽팽하기 이를 데 없다.


기선은 먼저 시작한 뉴하트가 잡았다. 뉴하트는 도입부분이 방영되었을 때 조재현의 포스가 화면 너머까지 뿜어져 나오면서 하얀거탑의 김명민, 왕과나의 전광렬에 이은 또 하나의 본좌 캐릭터가 탄생하나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어쩌랴, 정치와 암투는 한끝 차이였던 것을. 하얀거탑의 정치적 대립이 힘의 격돌이었다면 뉴하트의 대립은 어찌된 일인지 암투로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힘이 빠졌다. 게다가 고만고만하게 이어지는 병실 대소사와 적당한 로맨스가 초반의 힘을 강화하지 못했다. 현재 뉴하트는 간혹 나오는 긴박한 수술 장면으로 드라마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통상적으로 동시간대에 확고히 자리를 잡은 드라마가 있으면 타드라마들이 치고 나오기가 힘들다. 그러나 힘 빠진 뉴하트는 공간을 열어줬고 타 방송사는 공격적인 스루패스를 찔러 넣었다. 쾌도 홍길동과 불한당이 패를 던진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시작 전부터 워낙 관심을 모았다. 쾌도 홍길동은 환상의 커플, 마이걸의 그 유명한 홍자매가 작가로 참여한 작품이다. 그렇지 않아도 홍자매의 신작을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사람들에게 예고편에 보인 쾌도 홍길동의 화려한 액션은 기대감을 폭발시켜버렸다. 게다가 방송사 측도 쾌도 홍길동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불한당은 그에 비하면 과히 주목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불량가족을 아직 잊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신작이었다. 불량가족은 그 소박한 명성에 비해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그 불량가족의 유인식 PD가 불한당이라는, 그 이름도 불량스러운 제목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게다가 작가도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다.


하여 수목 미니시리즈 시간대는 대패닉의 전장이 돼버렸다. 먼저 자리 잡아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뉴하트와 홍자매의 쾌도 홍길동, 그리고 불량한 불한당까지.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쾌도 홍길동과 불한당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단 쾌도 홍길동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허공에 붕 떠 있어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홍길동이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는 건 머리로 인지가 되는데 심장이 안 움직인다. 와중에 무협물인데도 무술신이 약하다. 심지어 대왕 세종의 액션보다도 쾌도 홍길동의 액션이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다.


불한당은 마이걸에서 대대적으로 성공했다가, 헬로 애기씨에서 우려먹어 처절히 실패한 이다해의 이미지를 한번 더 반복하는 걸로 보였다. ‘방송사가 지금 배우 하나를 죽이는구나’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게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부자, 깡패, 바람둥이 등의 캐릭터들이 쾌도 홍길동처럼 부유해 감정이입이 될 수 없었다. 같은 기간에 뉴하트는 삼각관계로 진입하고 있었고.


3~4회에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쾌도 홍길동은 조금은 재밌어졌는데 그건 성유리가 약간 웃겨졌기 때문이다. 불한당은 그 정도가 아니라 괄목상대하기 시작했다. 헬로 애기씨의 불행한 그림자로 스러질 것만 같았던 작품이 당당한 ‘불량’의 포스를 내뿜기 시작했다.


불한당 3회에서부터 드디어 보는 이의 정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정이입이 시작된 것이다. 거처를 잃고, 돈도 없고, 깡패에게 쫓기는 장혁. 끝까지 몰아붙이는 설정이 부유하던 극을 지상에 안착시켰다. 그에 반해 쾌도 홍길동에서 홍길동도 불한당이지만 그것이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장혁이 여은행원의 주머니 사정을 듣자마자 잔인하게 차버리는 대목도 감정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장혁 최악의 순간에 손을 내미는 이다해. 장혁에게 서광이 찾아오는 순간 장혁의 치부인 여자장부를 들고 나타나는 은행원. 장혁이 격동할 때 울리는 지긋지긋한 전화벨. 불한당이 극적인 재미를 주기 시작했다.


1~2회에서 부유하던 이다해는 3회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알고 보니 지금까지의 부담스런 밝은 톤은 극의 설정이었다. 원래 설정상 작위적이었으니 작위적으로 보이는 게 맞았다. 방송사가 배우를 죽이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불한당은 지금까지의 이다해 연기의 결정판이 될 것만 같은 서늘한 예감이 들고 있다.


3회에서 홍경인의 화장실 눈물연기는 홍경인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장혁에게 당한 은행원이 장혁에게 매달리는 장면의 연기도 훌륭했다. 되는 드라마는 연기자복이 있는 건가, 아니면 드라마가 훌륭해서 연기자들로부터 살아있는 연기를 이끌어내는 건가. 둘 다인 것 같다.


장혁의 연기도 튼튼하다. 수목 드라마 삼국지 젊은 남자 주인공들 중에서 지금까진 장혁이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자기가 사기 친 은행원이 이다해를 찾아온 것을 떼어내고 은행원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그 은행원에게 소리치는 장혁의 목소리에선 정말로 ‘악’이 느껴졌다. ‘연아야 그냥 죽어’할 때의 그 비열함이라니. 세상에 이런 '불한당‘이 있나. 나쁜 놈!


옛날 화산고 때부터 느꼈던 건데 장혁은 참 좋은 배우다. 이런 배우를 끌고 간 군대가 밉다. 군대 요리조리 빼서 군대 끌려간 다른 배우 바보 만든 병역비리자들은 더더욱 밉다. 진짜 불한당들이다.


불량가족의 결말은 말도 안 되는 해피엔딩이었는데 이번에도 깡패들이 개과천선하면서 끝날런지는 모르겠다.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고도 해피엔딩이 된다면 거의 로또 당첨 수준의 황당한 일일 것이다. 장혁의 빚이 억대로 추정된다. 현실이라면 잘 해야 인간극장 눈물바다, 못 되면 자살이나 노숙자로 끝날 결말이다. 하지만 불량한 드라마니까 불량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란다. 불량가족의 어이없는 해피엔딩 정말 좋았다.


장혁이 자꾸 코피를 흘리는 게 왠지 불안하긴 하다. 설마 불치병 설정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길 바란다. 그건 아니다.


쾌도 홍길동도 나름 흥미는 간다. 우스운 장면들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붕 뜬 홍길동. 템포도 빠르고 볼거리도 많아 오감이 즐겁긴 한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서사성에서 몰입도가 떨어진다. 뉴하트도 일정 정도의 재미는 있는데 그 ‘일정 정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불한당도 처음 시작했을 땐 안일한 캐릭터에 붕 뜬 이야기 같았으나 3회부터 생각지도 않게 극이 땅에 발을 딛고 섰다. 장혁의 처지와 이다해의 처지, 그리고 그밖의 사람들, 은행원, 김진구, 깡패 등의 처지가 모두 절박하게 얼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6회에 장혁의 사기와 이다해의 진심이 작렬하면서 드디어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드라마로 승천했다. 드라마가 점점 더 불량스러워지고 있다. 불량가족이래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런 불량한 드라마!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