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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패떴, 이효리는 영리했다

 

비록 마지막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패밀리가 떴다> 1기는 한 해 동안 공식 기록상으로 단일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올린 예능프로그램으로서 분명히 성공한 작품이었다고 총평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끈 두 사람이 유재석과 이효리였다.


이 둘은 ‘국민남매’라는 캐릭터로 <패밀리가 떴다>의 중심에 있었다. 물론 유재석의 공헌도가 훨씬 크지만, 이효리의 공헌도 무시할 수 없다. 그녀는 여성파트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게 작품의 성공에 공헌했으며, 역으로 국내 최고 예능프로그램이 된 <패밀리가 떴다>에 의해 ‘역시, 이효리!’라는 찬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공헌자이며 최대 수혜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이다.


<패밀리가 떴다> 1기가 정리되는 시점에 이효리는 유재석과 함께 SBS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해 보기 좋은 마무리를 했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유재석의 제안으로 그녀는 자축의 막춤을 즉석에서 선보여 그녀가 왜 ‘퀸’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영리하지 않았다면, <패밀리가 떴다>에서 가장 먼저 원성의 표적으로 떠오른 캐릭터가 바로 그녀일 수 있었다. 그녀의 현명한 선택 때문에 프로그램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성공으로 이끌고 마지막에 공동대상과 함께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큰일날뻔한 이효리 -


보도에 따르면 2008년 당시에 SBS 연예대상을 이효리와 유재석에게 공동으로 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 둘의 공헌도와 한국의 시상식 관행으로 미루어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때 이효리는 ‘재석 오빠의 공동수상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재석 오빠가 단독 수상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SBS에 전달했다고 한다. 결국 그해 SBS 연예대상은 유재석이 단독으로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9년에 이르러서야 공동수상한 것이다.


이효리가 정말 영리한 선택을 했다. 만약 대상 받는 데에만 급급해서 2008년에 유재석과 공동으로 대상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터넷에서 매장됐을 것이다.


당시 분위기는 흉흉했다. 유재석이 그전에 치러진 MBC,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방송사에 대한 비난, 강호동에 대한 비난, 무관인 유재석에 대한 동정, 심지어 대상 재시상을 요청하는 청원운동까지 인터넷은 뜨거웠다. SBS 연예대상은 마지막에 치러졌다. 거기에서마저 유재석이 찬밥으로 밀려나면 사이버 민란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이미 강호동이 단독으로 대상을 두 개나 받았는데 SBS에서 이효리가 유재석과 대상을 나누어 받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녀는 유재석 팬들의 공적이 됐을 것이다. 그녀가 불쑥 끼어들어 유재석이 냉대 당하는 데에 한몫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뭘 했는데 대상을 나눠 받냐’는 비난을 받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다음 2009년 내내 시청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이효리가 대상의 값어치를 하는지를 따졌을 것이다. 그녀에겐 가시방석이다. 조금만 못 웃겨도 툭하면 비난이 터졌을 구도인 것이다.


이효리는 영리하게도 대상을 사양함으로서 이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대상 MC 유재석의 조력자로서 한 해 동안 부담 없이 활약한 후에, 공동대상을 받고 최고의 위치에서 퇴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8년 공동대상이 그나마 유재석이 하나 받을 대상마저 깎아먹는 구도였는데 반해, 2009년 공동대상은 이미 유재석이 MBC 대상을 받은 상태에서 이효리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구도였다.


- 이효리의 영리함이 그녀를 구원했다 -


이 에피소드에서 이효리의 영리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그녀는 2008년에 자신이 유재석과 함께 대상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정확히 판단했다. 가수 출신이라는 자신의 위치, 유재석보다 못 웃긴다는 자신의 능력, 프로그램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 공동대상 타이밍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상의 판단을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상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보통 상도 아니고 대상이다. 웬만한 연예인이라면 받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받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사양할 줄 아는 판단력을 보였다. 이런 영리함이 오늘날 당대 최고 엔터테이너로서 그녀의 성공에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가창력, 신체비례, 발음, 미진한 개그감각 등 약점이 아주 많은 그녀가 지금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훌륭한 판단력 덕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슈퍼스타K> 당시에 가창력도 떨어지는 그녀가 가수 심사를 하는 것에 질타가 쏟아졌었다. 하지만 그녀의 엔터테이너로서의 종합적인 판단능력에 비추어봤을 때 그녀가 심사자로 나서는 것이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노래실력과 판단능력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니까.


<패밀리가 떴다>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일 때도 처음엔 ‘이효리’라는 판타지가 깨진다며 걱정하는 평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런 비판들을 시원하게 돌파하며, 소녀요정에서 섹시스타로, 섹시스타에서 털털한 예능인으로의 변신을 성큼성큼 해냈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대상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녀의 이런 영리함이 2008년에 하마터면 당할 뻔한 위기에서 그녀를 구원했고, 오늘이 있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