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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박명수, 대박의 주인공 되다

 

역시 <무한도전>이다. 평소 고마웠던 멤버에게 쌀을 전해준다는 너무나 ‘단·순·한’ 설정에서 어떻게 이렇게 버라이어티한 내용을 뽑아낼 수 있을까? 지난주부터 진행되고 있는 ‘의좋은 형제 의상한 형제’ 편에서 생각 외로 다양한 재미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주에는 쌀을 가지고 눈치작전을 전개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웃음을 안겨줬었다. 평소 이런 종류의 눈치작전을 선도했던 노홍철이 의외로 조용히 있는 가운데, 이번엔 정형돈이 상황을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주엔 멤버들의 우애와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감동이 이어졌다. 물론 배신당한 길이 ‘삐뚤어지며’ 웃음을 선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다음의 전개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서 버라이어티’가 펼쳐진 것이다. 비디오가 ‘요물’이었다. 쌀을 주기만 했으면 그냥 그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무한도전>이 언제나 그래왔듯이 누가 누구한테 쌀을 줬네 안 줬네 하면서 아옹다옹하는 설정 정도밖에는 더 나올 것이 없었다. 하지만 비디오가 일을 저질렀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특히 남자와 남자 사이의 관계에서 서로의 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평생 동안 한번 있기도 힘든 일이다. 이런 일은 상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런데 쌀과 함께 마음을 전하라며 비디오 셀카를 시킨 것이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현실로 만들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쌀과 메시지를 아무 생각 없이, 건성으로 툭툭 뿌리고 다닌 것이 아니라 나름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인데, <무한도전>은 정말 잔인하게도 직후에 멤버들을 모두 만나도록 했다. 바로 직전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는, 그야말로 미칠 듯이 뻘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멤버들은 너무나 어색해했다. 그렇게까지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그리하여 웃기려고 코미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정서가 표출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웃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같은 한국 남자로서 그들의 정서에 너무나 공감이 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단둘이 있게 되는 것을 피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은 폭소까지 자아냈다.


작은 눈치작전의 잔재미와 감동, 그리고 정서 버라이어티의 폭소까지, 이 모든 것이 단지 쌀에서 시작된 것이라니!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박명수 감동, 정준하 안타까움 -


사실 박명수는 그 캐릭터 때문에 지나치게 저평가 되는 측면이 있다. 악하고 공격적인 모습이 비호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지 못하는 것도 저평가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유재석에게 민폐를 끼치는 혹 정도로 여기며 종종 공격해왔다. 유재석에게 박명수를 더 이상 챙겨주지 말라는 황당한 칼럼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 하며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이끌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못 웃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2인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해 해내고 있다. 단지 박명수도 인정했듯이 결혼 이후에 잠시 슬럼프가 있었을 뿐이다. 유재석과 그가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 지는 숱한 콤비 애드립에서 증명이 됐다.


문제는 웃긴다고 해도 캐릭터의 공격성과 몰인정함에서 비롯되는 비호감이 여전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번 ‘의좋은 형제 의상한 형제’편의 최대 수혜자는 박명수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는 이번에 몰인정함, 냉정함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훈훈한 인간미를 보여 줄 수 있었다. 멤버들에게 비디오 메시지를 남길 때 나타난 진솔함, 그리고 쌀을 받지 못한 멤버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시청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자신에게 전달된 쌀과 메시지를 보며 감격하는 모습에서도 그의 진솔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아, 박명수가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었구나!’라고나 할까?


이것을 촬영용 가식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만약 그랬다면 차가운 화면 너머로 감동을 전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가식적으로 인간미를 나타내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위악적인 행동을 장기로 삼는 사람이다. 또,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극히 어색해하는 성격으로 보인다.


유재석이 여성을 챙기는 모습이 방영돼 엄청난 찬사를 받았던 ‘품절남’ 특집에서도 박명수의 행동 양태가 나타났었다. 그때 그는 여성을 챙기는 것까지는 유재석과 동일하게 행동했지만, 위험이 사라지자 곧 딴청을 피우며 마치 자신이 타인이 어떻게 되건 말건 별 상관 안 하는 인간형인 것처럼 굴었다. 그는 이런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처럼 그가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이 가식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한도전> 이번 에피소드는 그의 따뜻함이 표현됨으로서 그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반전될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명수가 최대의 수혜자라고 한 것이다. 반면에 안타까운 것은 정준하다.



정준하도 ‘의좋은 형제’ 에피소드가 전개될 때까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호감을 샀다. 심지어 길의 상자에 쌀을 넣어주며 모처럼 빵 터뜨리는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 ‘의상한 형제’가 진행되며 호감을 다 깎아먹었다.


서운한 사람에게 쓰레기를 버리는 내용이 전개되면서 멤버들이 정준하의 단점으로 ‘자꾸 늦는다‘, ‘밥을 안 산다‘, ’잘 삐친다‘ 등을 거론한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멤버가 정준하를 서운한 사람으로 찍었는데, 이것은 거꾸로 그만큼 정준하가 사람이 좋기 때문에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찍은 것일 수도 있다. <무한도전> 구도상 정준하에게 쓰레기가 집중되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정준하의 단점은 방송이 됐고, 그 항목들이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남성에게 불명예스러운 것들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누적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박명수의 훈훈함이 감동이었던 와중에 정준하가 안타까움으로 남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