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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택연혈서 원더걸스혈서, 혈서파동의 이유는?

 

때 아닌 혈서파동이다. 갑자기 ‘열사’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게 생겨서 비분강개한 마음에 혈서들을 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아이돌 때문이다. 아이돌의 팬들이 경쟁적으로 혈서를 쓰며 아이돌에 대한 충정을 표시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 열사들이라고나 할까.


시작은 유명한 택연 팬 ‘생리혈서’ 사건이었다. 2PM 택연의 팬이 ‘옥택연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라는 혈서를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다.


그다음엔 엠블랙 이준(본명 이창선)의 팬이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고 그 피로 "이창선 나를 잊지 마 난 너밖에 없어 사랑해‘라고 쓴 이른바 ’동맥(or 정맥)혈서‘ 사건이 터졌다. 그 팬은 ’따라서 나도 해봄... 옥택연 혈서 뭐냐 쓸려면 제대로 쓰던지 할라면 제대로 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엔 ‘원더걸스 돌아와’라는 혈서가 나타났다. 주말에 한 유머 게시판에서 그런 내용인지도 모르고 우연히 관련 게시물을 클릭했다가, 상처가 난 팔뚝과 칼, 피가 선명한 이미지들을 보고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끔찍했다. 이건 병이다.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피가 난무하는 이곳을 대중문화판이라고 할 수 있나?



- 엽기적인 피바다, 도대체 왜? -


날로 도를 더해가는 아이돌에 대한 광적인 사랑, 광적인 집착이 마침내 피를 보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아이돌 팬들은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미친 듯이’ 애정을 표현하고, 경쟁자들에겐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으며 한국 대중문화계를 공포로 물들여왔다. 이젠 엽기 호러 영화를 찍는 수준까지 가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는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에게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한국의 아이들은 확실히 병에 걸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바로 사회다. 인간은 원래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것이나, 어른들이 그 아이들을 억지로 비인간적인 경쟁의 지옥 속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만 해도 경쟁지옥이 고1내지 고2 경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고3, 혹은 재수 정도에서 마무리 됐었다. 그런데 최근 10여년 사이 경쟁이 시작되는 연령이 더욱 낮아지고 경쟁의 강도도 훨씬 강해졌다. 이젠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경쟁이 시작되고, 대학 입학 후 20대에까지 무한히 이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인성이 파괴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아이들이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고 있다. 이런 판에 ‘아름답고 바람직한 문화성’이 생길 턱이 없다.


벼랑까지 내몰린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풀릴 창구는 오로지 아이돌과 인터넷뿐이다. 사회가 아이들을 절망으로 내몰자,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미친 듯한 아이돌 사랑과 인터넷 악플질로 풀어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결국 사회의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아이 때 잘못 형성된 인성은 평생 영향을 미쳐, 20대가 넘어서도 유사한 행동양태를 보이도록 만든다. 20대 이후에도 계속되는 경쟁과 불안은 이것을 더욱 조장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획일성과 경쟁인데, 혈서파동에서도 그것이 그대로 나타난다.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에게 피로써 애정을 표시하자 다른 사람도 획일적으로 그것을 따라 하고, 게다가 경쟁이 붙어서 더욱 극단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 중엔 스펙도 있다. 대학생들은 기본 스펙을 맞추기 위해 허리가 휠 지경이 됐다. 두려운 것은 이것이다. 인터넷에서 아이돌 팬이라고 자처하려면 피 좀 보여줘야 하는 것이 기본 스펙이 된다면?


‘피바다’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혀온다. 여기까지 가면 안 된다. 사회는 아이들 탓을 하기 이전에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자신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완성되는 특이한 존재다. 그런 인간에게 인성교육, 문화교육 다 내팽개치고 입시경쟁만 강요한 것이 사회이므로, 이보다 더한 일을 당해도 싸다.


그러므로 사회는 반성해야 하는데 이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의 이야기일 뿐이고, 당장은 극단으로 치닫는 아이돌 팬들에게 조금만 자제할 것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교육 기능을 갖고 있는 언론이 이런 문제의식으로 여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 인간적으로’, 피는 보지 말자. 팬들이 사랑하는 스타를 위해서도 이건 정말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