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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이 미쳤다! 또하나의 금자탑

 

<무한도전>이 미쳤다. 쌀 여섯 포대와 쓰레기봉투 여섯 개로 <무한도전>은 무려 3 주에 걸쳐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0년 <무한도전>의 시작은 가히 ‘레·전·드’였다.


쌀을 서로 전해주는 에피소드에선 멤버들의 따뜻한 인간미가 전해졌다. 특히 그동안 몰인정한 캐릭터로 비호감을 샀던 박명수의 진심이 느껴져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무한도전>은 곧바로 미운 멤버의 집에 쓰레기봉투를 가져다버리는 에피소드를 시작했다. 따뜻함과 무한이기주의의 총천연색 버라이어티다.


속고 속이는 눈치작전과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 <무한도전>의 장기 아닌가. 그러므로 쓰레기봉투 투척은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걱정도 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볼 만큼 본 설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전의 추격전들이 워낙에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웬만큼 해선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또 이전 추격전들이 치밀하게 기획된 스토리와 물량투입, 넓은 동선이 동원된 블록버스터였던 것에 반해, 이번엔 아주 단순 소박하게 당일 밤중에 상대의 집에 쓰레기봉투를 버린다는 극히 제한적인 설정이었다. 이런 설정으로 <무한도전>에게 기대되는 ‘빅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불안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폭주했다. 단 하룻밤, 쓰레기 여섯 봉투를 가지고 이들은 시청자를 ‘미치게’ 만들었다. <무한도전>이 미쳤다!



- 길, 미운 오리새끼에서 기린아가 되다 -


이전에 이런 종류의 포맷에서는 사기꾼 노홍철이 상황을 주도했었다. 이번엔 지난  주에 정형돈에게 속으며 ‘삐뚤어진’ 길이 사기계 꿈나무가 되어 폭주기관차 <무한도전>의 신형 엔진이 되었다.


길은 시작부터 정형돈에게 대뜸 사기를 치고, 지난 회에 자신을 속인 정형돈의 집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상황은 달리기 시작했다. 유재석이 바로 코앞에서 길에게 전화를 했지만 길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사기계 꿈나무임을 과시했다. 모조 봉투 아이디어까지 제시하며 유재석을 감탄시키기도 했다. 유재석은 신참이 못된 것만 배웠다고 혀를 찼는데, 그것은 길이 완전히 <무한도전>의 주전 멤버로 성장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때 프로그램은 길에게 ‘사기계 꿈나무’라는 자막을 헌정한다.


유재석은 하키채를 들고 있는 박명수의 집으로 길을 인도한다. 박명수와 함께 액션 상황극을 연출하려 한 것이다. 상황이 버라이어티하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박명수에게 간 둘은 결국 그에게 잡히고 만다. 그 사이에도 길은 박명수 습격에 한껏 들떠있는 유재석을 배반할 궁리를 했다.


박명수는 일단 둘을 돌려보낸 후에, 다시 둘의 앞에 막아서며 또 다른 상황극을 펼쳤다. 왜소한 박명수가 백만 대군 앞을 막아선 삼국지 장수처럼 당당히 서있는 모습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유재석-박명수 콤비의 저력을 느끼게 한 폭소였다. 누가 박명수를 유재석의 혹이라 했던가!


박명수가 ‘원투쓰리’ 상황극을 펼치고 있는 사이, 길은 유재석의 쓰레기봉투를 탈취해 도주한다. 유재석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라톤맨이 된다. 사실은 길이 처음부터 유재석을 떼어내려고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며 길은 다시 추격전의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감탄의 연속이다.



한편 사기계의 원조 노홍철과 정형돈은 정준하에게 갔다가 잡힌다. 노홍철의 협상으로 정준하는 쓰레기봉투 두 개를 받아들이고, 다시 정준하는 노홍철에게 두 개를 투척하려는 음모를 획책한다. 이때 모처럼 정준하가 ‘블링블링’해 보였다. 조금 후의 파국을 어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쓰레기봉투 두 개를 떠안게 된 노홍철은 원조 사기꾼답지 않게 주저앉는 듯했다. 이때 사기계 꿈나무 길이 제휴를 제의하며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노홍철은 길과 함께 쓰레기봉투 네 개를 유재석에게 투척하기로 하며 사기극의 공동주연으로 부상한다.


드디어 무한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지난주의 훈훈한 정은 완전히 사라진다. 폭주다. 그런데 이때 유재석도 노홍철에게 제휴를 제안한다. 흥미진진, 점입가경이다. 노홍철은 최후의 사기를 제안하며 단독 주연으로 급부상한다. 모두의 것을 정준하에게 몰아주자는 것이다. 유재석을 만난 길은 천연덕스럽게 그를 얼싸 안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끝까지 웃겼다.


유재석과 길이 실랑이하는 사이 노홍철은 쓰레기봉투 네 개를 들고 도주하며 클라이막스로 질주한다. 유재석은 다시 마라톤맨으로 변신, 만신창이로 웃음을 줬다. 노홍철은 결국 정준하에게 6개를 몰아주는 큰 웃음의 구도를 선택한다. 그가 정준하의 집에 쓰레기봉투를 던진 것은 절묘하게도 제한시간 약 15초 전. 마지막까지 기다려 편지를 던져주는 센스로 하룻밤의 폭주는 막을 내렸다.



- <무한도전> 올해도 레전드인가 -


너무나 무시무시한 이야기여서 나도 모르게 줄거리 요약을 하고 말았다. 아직까지 흥분이 식지 않는다. 반전에 반전, 폭소의 연속이었다. 그 엄청난 이야기가 쌓여 마지막 6개의 쓰레기봉투가 잡힌 쇼트를 정말 웃기는 것으로 만들었다. 해골모형까지 절묘했다.


‘나쁜 짓’을 완수한 노홍철이 길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며 ‘나 토할 뻔했어’라고 할 때는, 보던 나도 함께 쓰러졌다. 정말 폭발적으로 웃겼다.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다. 총 인원이 6명인데, 봉투 6개가 한 데 모이는 상상초월의 결말이 나온 것이다. 정준하의 것까지 정준하에게 갔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이 한 해를 무섭게 열었다. 2010년 시작부터 레전드다. 멤버 개인으로 봤을 때는 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에피소드였다. 길은 <무한도전>에 처음 합류했을 때 비호감과 거부감의 아이콘이었다. 하하의 복귀를 앞두고 부담감을 느낄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사기계의 꿈나무로 노홍철과 하룻밤의 폭주극을 주도함으로서 <무한도전> 내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처음 받았던 악플과 우려를 완전히 날려버린 것이다. 신형 엔진 길이 확실히 자리 잡은 폭주기관차 <무한도전>의 또 다른 레전드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