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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권투편, 특별한 의미의 이유

 

<무한도전>은 그 전에도 비인기종목을 후원했었다. 의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이야기들. 권투선수를 후원한다길래, 이번에도 적당히 그런 이야기일 줄 알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예상을 넘어, 그 이상을 보여줬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삶의 의미’였다. 이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지금이 2010년이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달이면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온 국민이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의 라이벌 전에 몰입하고 있다.


그리고 여름엔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월드컵이야말로 지구상의 스포츠 제전 중에 가장 국가 대 국가의 투쟁 의지가 격렬하게 맞붙는 장이다. 심지어 월드컵 경기 결과 때문에 사람이 살해당하는 일까지 일어날 정도다.


바로 그런 2010년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이 보여준 ‘인간’이 특별히 각별했던 것이다. 비인기종목 후원 차원이 아니다. <무한도전>은 이번에 진정한 스포츠정신과 삶의 정신이라는 큰 가치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 마음이 울컥울컥 -


분명히 신파는 아니었다. 대놓고 울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은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느냐 지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최현미 선수에게만 포커스를 맞췄다면 눈물이 아니라, 일본 선수를 눌렀다는 통쾌함만 있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서로 싸우는 두 선수 모두를 조명함으로서 프로그램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감동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승화됐다.


경기를 한일전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진심이 맞붙는 장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원초적인 종목인 권투를 통해. 이번에 <무한도전>은 확실히 권투를 제대로 홍보해줬다. <무한도전>이 그려낸 인간의 진심, 집념을 시각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종목이 권투였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성공했고, 그 성공을 통해 국민은 권투라는 종목의 원초적인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위에 언급했듯이 권투 후원은 오히려 작은 부분이고(여기까지만 해도 일개 예능프로그램으로서 대단한 일이지만), 더 큰 성과는 스포츠와 인간을 통해 근본적인 차원의 감동을 전해줬다는 데 있다.



프로그램이 두 선수를 모두 응원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경기를 보면서 승패보다는 두 선수의 치열한 집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어렸을 때 수없이 본 10회 이상의 판정 경기, 즉 KO가 아닌 지루한 경기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두 선수의 치열한 집념, 숭고한 의지가 시청자의 심장을 직격한 것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그녀들의 의지는 보는 이를 압도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또 위대한 투쟁의 모습. 그것은 거대한 감동이었다. 시종일관 장난스럽게 멘트를 날리던 박명수도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두 선수 다 힘내시기 바랍니다!’라고 진심을 터뜨렸다. 유재석은 마음이 울컥울컥하다고 했고, 정형돈과 길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 공이 울리는 순간 내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온 눈물. 그녀들의 숭고한 의지가 내 숨을 멎게 했다.



- 스포츠의 해인 2010년, <무한도전>의 예방주사 -


서두에 말했듯이 올핸 올림픽과 월드컵의 해다. 그 열정적인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무한도전>이 미리 말해준 것이다.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는 승패나 국가대항이 아닌, ‘인간’ 그 자체에 있는 것이라고. 권투라는 원초적인 종목의 시각적 강렬함이 이 메시지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무한도전>은 경기가 끝난 후 승패가 결정되는 장면을 아예 편집해버렸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들어낸 것이다. 대신 <무한도전>은 아래와 같은 메시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복싱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육체의 예술이다.’


여기서 ‘복싱’이란 두 글자를 ‘스포츠’로 바꾸면, 그것이 바로 이번 <무한도전>의 주제가 된다. 이것은 2010년 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국가대항전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예방주사와도 같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경기가 끝난 후 승자이며 한국인인 최현미 선수가 아니라, 패자이며 일본인인 쓰바사 선수의 대기실을 조명했다. 그 장면이 이번 회에서 가장 감동적인 씬이었다.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스포츠의 감동이라고 프로그램은 웅변하고 있었다.


경기장 안에 있는 건 국가와 국가가 아닌 ‘인간과 인간’이라는 것. 중요한 건 승리를 향한 욕심이 아닌 ‘인간의 숭고한 의지’ 그 자체라는 것. <무한도전>이 비인기종목을 후원하며 감동 눈물을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장 근본적인 가치까지 돌아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괴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