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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추노, 신들린 성동일 미친 존재감

 

<추노> 10회에서 성동일의 귀곡성이 터져 나왔다. 언제나 비열하고 야비하게, 속을 알 수 없는 웃음만 흘렸던 성동일이 처음으로 진심을 보인 순간이다. 이 장면이 10회에서 단연 압권이었다.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게 천지호야. 알어! 이 천지호!”


라고 절규할 때 그에게선 귀기가 흘렀다. 폭발적인 열연이다. 그 순간 성동일이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에 감춰진 송곳이 그 날카로움으로 결국 제 존재를 스스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드라마 <추노>에선 성동일이 바로 낭중지추의 형세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었다.


장혁과 대립하며 언제든 그를 죽이려고 기회를 노리는 잔혹한 왈짜패의 ‘언니’로 나오는 그는,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올 때마다 극을 장악하며 ‘미친 존재감’의 위력시위를 해왔다.



약자에 대한 야비함, 자기 밥그릇을 넘보는 자에 대한 공격성, 양반에 대한 비굴함, 돈을 향한 집념, 강자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성동일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그려내고 있다. 포청 포교와 양반 의뢰자의 비위를 다 맞춰주면서도 자존심만은 끝까지 지키고 얻을 것은 넉살 좋게 다 얻어내는 왈짜패의 모습 그 자체다.


성동일이 아닌 ‘천지호’를 상상할 수 없다. 이건 신들린 연기다. 특히 이번 10회에서 보인 성동일의 조용한 오열은 압권 중의 압권, 물 오른 연기의 화력시범이라 할 만했다. 방송 분량은 잠깐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 갔다.


그야말로 씬스틸러의 전형이다.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존재감으로 주연 이상으로 부각되는 씬스틸러 말이다. 프로그램이 작심하고 성동일을 부각시키려 한 듯, 그에게 썩어문드러진 이빨 분장을 해준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아무리 분장이 받쳐줘도 배우가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면 말짱 헛일. 성동일은 그 분장을 본인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소화해 미친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추노>는 조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성동일이 귀곡성을 터뜨린 10회에도 원손을 지키던 병사와 궁녀의 열연이 있었다. 이종혁의 진절머리 나는 추격자 연기도 일품이었다. 삼보사격 스나이퍼 공형진은 말할 것도 없고, 10회에선 이다해의 오빠 역할인 조재완도 처절한 연기를 보여줬다. 포청 포교 이한위의 능청도 빼놓을 수 없다. 공형진에게 살해당한 자를 비롯해 비루한 양반 셋이 주안상을 앞에 놓고 문어체로 수작질하는 장면도 <추노>의 백미 중 하나였다. 한 명도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다. 모든 등장인물이 반드시 느낌표를 찍게 만드는 꽉 찬 작품인 것이다.



그 조연들이 모두 다 빛나지만, 성동일의 존재감은 가히 눈 부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웃기면서 섬뜩하다. 성동일이 등장할 때마다 몰입도가 배가된다. 그의 분량이 너무 적은 것 때문에 제작진을 원망까지 하게 된다. 이쯤 되면 ‘성동일 앓이’라고 해야 하나?


<추노>에서 보여주는 연기로 보면 성동일은 송강호 못지않은 한국 대중문화계의 자산이다. 바로 이런 사람을 장인으로 대접해줘야 한다. 아끼는 부하의 죽음에 울고 웃으며 복수를 다짐하던 그 귀기는, 이다해 오빠의 절규와 함께 <추노> 10회에서 오래 기억될 만한 장면이었다.


9회와 10회에서 성동일의 부하들이 몰살당했다. 천지호보다 더 야비하고 잔혹한 양반님네들한테. 그러므로 우린 앞으로 더욱 살벌해진 성동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천지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