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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추노, 대길의 비밀이 밝혀지다

 

월악산에 들어갔을 때 대길의 비밀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한양 최악의 야차 같은 추노꾼이었던 대길이 사실은 노비들을 빼돌리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대길이 양반에게 핍박받는 노비를 빼돌리는 에피소드는 <추노> 초반부에도 나왔었습니다. 그 설정으로 악귀처럼 보이는 대길이 사실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형성된 것도 사실이죠.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알려진 바와 같이, ‘나쁜 놈’, ‘지랄 맞은 놈’, ‘개 같은 놈’ 등의 캐릭터는 대중흥행물의 주연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도덕적인 인물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윤리나 규범 따위가 아닙니다. 그런 제도적인 틀에서는 벗어나도 되지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과 생명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이게 없으면 대중이 감정이입을 안 하고, 그러면 흥행이 망하게 되죠. 아주 특별한 경우에 예외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따뜻한 인물에 호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지요.(아기조차도 남을 도와주는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비록 작품 초반에 대길이 노비 모녀를 살려주는 에피소드가 방영돼서 그를 주인공답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비쳤습니다. 그 사건을 제외하면 대길은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최악의 추노꾼에 불과했지요. 시청자들은 그것을 언년이 오누이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처참한 삶으로 이해했지만, 차포 떼고 보면 어쨌든 간에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나쁜 놈’이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월악산에서 밝혀진 비밀은, 대길이 모녀를 빼돌린 것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실은 지금까지 쭈욱 그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주인공으로서의 대길의 캐릭터가 완성됐습니다. 고통 받는 인간을 외면하지 못하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캐릭터가 온전하게 구현된 것이지요. 이런 것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처음에 얼음처럼 비쳤던 대길에게 차츰 따뜻한 온기를 입혀가는 작업을 <추노>는 두 번에 걸쳐 했습니다. 첫 번째는 대길이 이천에 땅을 사놨다는 비밀이 밝혀진 일이었지요. <추노>는 초반에 대길이 동료들의 돈을 빼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돈을 허투루 쓰는 동료들을 염려해, 그들이 여생을 보낼 땅과 집을 몰래 마련했다는 것이 밝혀진 겁니다. 거기에 동료들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길의 캐릭터에 온기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이번에 대길의 추노꾼 행각을 해명한 일입니다. 추노하는 척하며 양반의 돈을 취했을 뿐, 사실은 노비들을 구해줬다고 해명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대길 캐릭터 만들기 프로젝트가 일단락 됐습니다.


더불어 대길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언년이 남의 여자가 되고, 그런 언년을 바라보는 대길의 아픈 눈빛을 부각시키고, 남의 여자가 됐지만 그녀의 행복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희생정신도 부각됐지요.


‘인간미 + 아픈 사랑 + 흑기사’


주인공 캐릭터 3종 세트의 구현입니다. <추노>가 대길에게 올인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캐릭터의 성격은 반드시 배우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 경향에 비추어보면 장혁은 정말 로또 맞은 셈입니다.



아쉬운 건 현실입니다. 주인공이 어떤 성격이어야 하는가, 한 배역이 어떤 성격을 보일 때 호감이 가는가, 어떤 성격일 때 극을 이끌고 갈 힘이 생기는가는 이렇게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우리 아이들을 거꾸로 기르고 있습니다.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아이, 내가 아픔을 감당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옆의 친구를 밟고 올라가 너 혼자 출세하라는 경쟁심만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지요.


경쟁심, 나만 아는 이기심 등의 성격을 보이는 사람은 추합니다. 그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도 추하겠죠. 입시경쟁이 언제나 있었던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에 돌입할 정도로 심해진 건 불과 10년도 안 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요즘 남의 상처나 사생활에 악플을 다는가 하면, 왕따에 10대 폭력 등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이대로 가면 얼마나 더 추해질 지 무섭습니다. 따뜻함이 밝혀지기 전의 <추노>의 세계, 그 살벌한 풍경이 우리의 미래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