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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하이킥, 떡밥키스로 세경을 망가뜨렸다


<지붕 뚫고 하이킥> 마지막 회에서 우리는 최악의 결말을 또다시 목도하고 말았다. <아이리스>에 이어 ‘죽음 드립’ 2다.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어떤 필연성도 없이, 단지 충격적이고 여운이 남는 결말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건 여태까지 <지붕 뚫고 하이킥>을 사랑했던 팬들에 대한 테러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산골에서 올라온 소녀의 성장기라고 했다. 그래놓고 그 소녀를 밑도 끝도 없이 죽이는 건 무슨 경우인가?


<지붕 뚫고 하이킥>이 어둡게 끝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마음이 모두 엇갈리면서 아픈 이별을 하는 것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승행’이라니. 이건 오버도 너무 심한 오버다.


김병욱 PD는 ‘시간이 정지된 것’이라며 ‘뒤늦은 자각을 그리고 싶었고 더 절절하게 그리고 싶었다’라고 했다고 한다.


시간이 정지? 이해가 안 된다. 시간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죽은 것이다. 게다가 절절? 죽이면 다인가? 죽이면 절절해지나? 워낙 뜬금없이 죽었기 때문에 절절은커녕 황당하기만 하다.


즉, 공감결말이 아니라 제작진만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감동받는 ‘아집결말’, 시청자들은 허탈한 ’허탈결말‘, 여태까지 몰입한 사람들을 우습게 만드는 ’테러결말‘이다. 제작진이 경기종료 직전에 상대편 골문에서 우리편 골문까지 질풍의 역주행 드리블을 해 굿바이 자살골을 넣었다.



- 아집결말, 허탈결말, 테러결말, 떡밥과 식모의 교통사고로 얼룩지다 -


<지붕 뚫고 하이킥> 결말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허탈한 죽음. 죽음의 문제에 대해선 위에서 이미 설명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와중에 죽음조차도 ‘떡밥’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즉 암시만 하고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정말 죽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너무한 것 아닌가?


둘째 황당한 캐릭터. <지붕 뚫고 하이킥>은 세경이 지훈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정리했다는 것을 빨간 목도리를 버린 것과 ‘이미 겨울이 지나갔다’는 세경의 말로 보여줬었다. 시청자들은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세경은 준혁과 가까워졌고 키스까지 했다. 그런데 막판에 다시 지훈에게 사랑고백을 하다니. 어떻게 한 캐릭터의 성격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나.


지훈도 황당하다. 바로 직전에 정음에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런데 세경이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그도 이미 아는 말을 했을 뿐인데 ‘뒤늦게 자각’해서 얼이 빠지다니. 우왕좌왕의 극치다. 시청자들이 사랑했던 캐릭터들을 막판에 오락가락 시키면서 망가뜨린 것이다.


이렇게 성격을 오락가락하게 만들어놓고 급작스럽게 죽여봐야 절절할 리가 없다. 정말 절절하려면, 준혁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세경이 공항에서 준혁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정음은 신분차 때문에 결국 지훈을 떠나보내는 정도로 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정서로서의 ‘절절’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절절은 그런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악취미의 단계까지 나아갔다.



- 떡밥키스로 망가진 세경, 그녀는 희대의 요부였다? -


특히 막판에 망가진 세경 캐릭터가 안타깝다. 세경 캐릭터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캐릭터였다. 순수하면서 남에게 상처 받는 소녀, 그래서 지켜주고 싶은 소녀였던 세경.


준혁의 키스를 받아들였을 때 일부의 사람들이 세경의 캐릭터에 의구심을 표명했다. 어떻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키스를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정키스’ 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세경이 지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것이 확실했고, 준혁 때문에 눈물도 흘렸기 때문에 연민과 진심이 반씩 섞인 리얼한 키스라고 정리됐다.


하지만 마지막 회의 고백에 의해 그 키스는 우정의 키스 즉 시청자를 오인하게 만든 ‘떡밥키스’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결국 세경의 마음속엔 지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준혁이 멀어지려고 하면 계속해서 준혁의 손을 잡았다. 게다가 키스까지. 작품이 막판에 세경을 노련한 어장관리녀로 만들고 말았다. 도대체 그 떡밥키스를 보고 아름답다며 눈물짓고 감동 받았던 사람들은 뭐가 되나?


아니, 어장관리녀 그 이상이다. 조카랑 키스하고 바로 다음에 삼촌한테 사랑 고백하는 걸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게다가 한 명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으니 소름끼치는 물귀신 팜므파탈이다. 세경 캐릭터를 무너뜨려도 어떻게 이렇게 무너뜨리나.


산골 소녀의 성장담? 그게 아니라 무서운 요부가 주인집 아들내미들을 현혹해 한 명의 인생을 끝장낸 이야기가 됐다. 아름답지도 마음이 아리지도 않은, 그저 섬뜩할 뿐인 이야기. 이렇게 끝낼 거면 준혁과의 키스신을 없앴어야 했다. 그랬다면 일편단심 순수한 소녀의 불행쯤으로라도 정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갔어요’에 이은 준혁과의 키스를 지훈에게 고백하기 직전에 배치하는 바람에 세경 캐릭터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가고 말았다.


순수하고 아픈 청춘들의 성장담과 사람의 이면, 세상의 그림자에 대한 천착으로 감동을 줬던 <지붕 뚫고 하이킥>. 그 결말이 막판 떡밥 장난, 라인 장난, 식모의 교통사고로 얼룩진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