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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이웃집웬수, 막장 아닌 이혼이야기

 

 새 드라마 <이웃집 웬수>가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타와 물량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와 이미연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상당한 홍보가 진행된 <거상 김만덕>을 따돌리고 주말드라마 2위로 떠오른 것이다. 작품이 이렇게 선전하면서 드라마 속에서 ‘이혼’이 그려지는 방식도 화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웃집 웬수>가 이혼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이 대뜸 이혼부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구질구질하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삭제하고 쿨하게 이혼남녀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이혼의 향연이다.


 여주인공인 유호정의 아버지도 재혼 커플이다. 남자주인공인 손현주의 삼촌도 드라마 초반에 이혼했다. 유호정은 아버지가 재혼한 후 달라진 가족에 낯설어 했던 자신의 삶이 자식인 은서에게 재현될까봐 전전긍긍하지만 결국 본인도 이혼을 하고 말았다.


 드라마 속에서 선뜻 이혼을 하지 못하던 삼촌은 손현주에게 묻는다.


 삼촌 : ‘넌 이혼이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더냐?’

 손현주 : ‘마음먹으면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삼촌 : ‘너 대단한 놈이다. 이혼이란 걸 다 해보고.’

 손현주 : ‘전 이혼 안 하고 사는 삼촌이 더 대단해보입니다.‘


 이런 대화를 나눈 직후에 삼촌도 드디어 이혼을 감행한다. 이혼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마음먹으면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이 드라마에 깔려있다. 손현주는 말한다. ‘결혼도 이혼도 별것 아니네’


 이런 내용이므로 이 작품을 통해 드라마 속 이혼상이 새삼 화제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드라마 속에서 이혼은 손바닥 뒤집듯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양 가문이 파탄지경에 처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설정이 보통이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주말드라마인 <수상한 삼형제>에서도 김현찰 도우미 커플이 이혼 운운하며 처절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혼이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면서 이혼의 어두운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기도 했다. 불륜,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과 이혼은 한 세트였던 것이다. 막장드라마에서 악독한 시어머니나 악녀가 저지르는 악행이 주로 자식이나 남을 이혼시키는 것이었다. 최근엔 악독한 시아버지가 이혼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아내의 유혹>은 이혼녀인 장서희의 이야기였고, <밥줘>는 이혼녀인 하희라의 이야기였다. 이들이 이혼하기까지 막장적 설정이 이어지며, 이혼한 다음엔 욕하면서 보게 만드는 막나가는 관계들이 전개됐다. 이혼은 그런 막장적 설정의 기본 토대였던 것이다.



 이혼한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도 다르다. <이웃집 웬수>에서는 이혼남도 이혼녀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소시민으로 그려진다. 결혼한 사람이나 이혼한 사람이나 그저 모두 우리 이웃들인 것이다. 반면에 기존의 드라마에서 이혼남, 이혼녀는 특별한 존재였다.


 한국의 통속 드라마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가족주의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혼은 이러한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그리하여 이혼남은 정상에서 일탈한, 패배자  혹은 낙오자처럼 그려졌다. 한 마디로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불쌍한 남자였던 것이다. 이혼녀는 불쌍한 처지로 그려지는 건 기본이고, 더 나아가 위험하고 악독한 존재로까지 그려졌다.


 <수상한 삼형제>에서도 이혼남인 첫째 아들 김건강은 단지 불쌍하고 찌질할 뿐이지만, 그와 결혼하는 사실상의 이혼녀 엄청난은 음흉한 존재로 나온다. 또 이혼녀인 태실장은 둘째 아들인 김현찰을 유혹하고 도우미를 교묘히 궁지로 몰아넣는 악녀중의 악녀로 나온다. <찬란한 유산>에서도 김미숙이 이혼녀 팜므파탈로 등장했었다. 말하자면 이혼녀를 뭔가가 결핍된 존재로,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존재로 그렸던 것이다. 반면에 <이웃집 웬수>에서 이혼남녀는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한편, 범람하는 ‘아줌마 판타지’에서 이혼은 아줌마들의 로망이 실현되는 기본 출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자신을 무시하고 구박하는 남편과 헤어진 다음, 멋진 커리어 우먼 우아한 외모로 변신, ‘재력과 능력과 근육과 큰 키를 갖춘 잘 생긴 연하남‘과 새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 말이다. <조강치처 클럽>의 나화신은 이혼한 다음 구세주를 만나고, <천하일색 박정금>에서 박정금은 변호사인 한경수를 만나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는 구질구질한 가정주부 홍선희가 당대의 스타 송재빈과 새 출발했다. 이런 유치한 판타지가 수많은 주부용 드라마에서 반복되고 있고, 그에 따라 이혼이 흔해졌다.


 <이웃집 웬수>의 이혼은 이런 판타지용 이혼과도 다르다. 이혼한 다음 연하의 준재벌 꽃미남의 열렬한 구애를 받는다는 식의 판타지 로맨스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상업드라마이므로 어느 정도 비슷한 설정은 있지만, <이웃집 웬수>의 이혼이야기는 기존의 통속 드라마들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고 섬세하며 잔잔하다. 판타지 이혼이 아니라 현실 속 이혼이야기인 것이다. 판타지나 막장적 설정이 아닌 현실적 이혼이야기도 흥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웃집 웬수>가 보여줬다.


 여성이 죽으나 사나 시댁에 매여 살던 ‘눈물의 며느리’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아직 여성이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독립성이 신장됐다. 지지고 볶더라도 무조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과거보다 약화됐다. 이젠 이혼이 불행한 결혼생활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하나라는 인식이 넓게 퍼지고 있다. <이웃집 웬수>는 이런 시대변화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공감했고, 예기치 못했던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반면에 시청자에게 아무런 공감도 주지 못했던 기대작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감과 더불어 <이웃집 웬수>는 잘 만든 영상물을 본다는 만족감도 안겨줬다. 화사하고 세련된 화면과 쿨한 감정묘사는 주말드라마가 아닌 미니시리즈를 보는 듯했다. 흡사 손예진과 감우성의 웰메이드 미니시리즈인 <연애시대>가 주말 연속극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이런 만듦새도 작품의 화제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가족에 종속된 구성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독립된 개인으로 볼 것인가,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 흐름은 독립된 개인의 편이다. 전통적인 가족주의는 점점 해체될 것이다. 이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서양처럼 개인을 독립된 개별주체로 보는 시각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적인 가족적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작품들과 서구적인 개인주의에 입각한 작품들이 공존하면서 두 가치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