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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제중원, 박용우의 감동적인 열연

 

<제중원>은 조선말에 한 백정이 의사가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박용우가 그 백정으로 나오지요. 그는 양반 행세를 하면서 조선 최초의 서양병원인 제중원에 들어가 서양의학을 배웁니다.


가히 안타까움의 연속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이 제 신분을 속인다는 건 칼끝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니까요. 최근 <추노>에선 기껏 신분을 속이고 안돈한 이다해의 오빠가 갑자기 들이닥친 추노꾼에 의해 패가망신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했지요.


<추노>의 꿈은 신분 차별 없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시대배경이 조선 중기이니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백일몽이지요. 당연히 <추노>는 비극으로 끝날 듯합니다.


<제중원>은 비극이 아닌 작은 승리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시대배경을 조선말로 택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조선말이니까요. 이런 시대배경에서 <제중원>은 천민인 박용우가 천신만고 끝에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박용우의 승리이기도 하고, 우리 역사의 승리이기도 한 것이죠.

<제중원>에서 처음으로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박용우가 의사가 될 것을 결심할 때였습니다. 자신에게 백정의 업 이외의 인생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박용우가, 서양에는 신분차별도 없고 하층민이 의사를 했다는 말에 의사가 될 꿈을 꾸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박용우는 인생의 의미를 비로소 찾게 된 한 천민의 벅찬 심정을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수혈 실험을 할 때 박용우는 천민의 피가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천민의 피와 양반의 피는 다르다고 완전히 믿었던 것이죠.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와 양반의 피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환희에 휩싸입니다. 이때 그는 사람이 모두 같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와 환자를 살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되고 처형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그가 익힌 서양의학 기술이 결국 그를 살리죠. 왕은 그가 러시아 공사의 병을 치료하자 면천을 시켜주고, 이름을 하사합니다. 그가 마침내 사람대접 받는 온전한 인간이 된 겁니다.


박용우가 여태까지 무려 24회에 걸쳐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이번 주에 그가 마침내 천민 신분에서 해방되는 순간은 감격적이었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치는 장면이나, 아버지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자축하는 장면은 눈시울을 뜨겁게 했죠.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가 당한 고통이 워낙 절절했으니까요.


박용우의 연기가 이야기의 극적인 감동을 배가시켜주기도 했습니다. 박용우는 연기의 장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복근과 액션이라는 극적인 장치도 없고, 강렬한 카리스마도 없어서 그의 열연이 부각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중원>에서 그는 극 중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중원>은 100년 전 새 세상, 그 세상을 맞은 한 천민의 작은 승리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추노>와 <동이>에서 그려지는 천민의 한이 <제중원>의 시대에 풀렸던 것이죠.


그것으로 한이 완전히 없어졌을까요? 불행히도 아닙니다. 제도로서의 신분제가 없어졌을 뿐, 계층 사이의 간격과 차별은 여전합니다. 더욱 암담한 것은 그 간격과 차별이 2000년대 들어서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추노>에서 그려지는 천민의 한이 현재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직업, 학벌, 사는 지역, 재산 등으로 사람을 가릅니다. 그 간격이 얼마나 큰지는 <지붕 뚫고 하이킥>이나, 수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분차를 뛰어넘는 혼인의 어려움이 막장드라마의 주요 소재지요. 부와 학벌의 세습에 의해 과거의 신분제가 실질적으로 부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박용우의 고통은 현재적입니다. 그가 흘린 뜨거운 눈물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것이죠. 나날이 양극화가 심해져가는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감동이 실현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