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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추노, 그들이 정말 죽었을까

 

<추노>가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민초들의 중심 캐릭터였던 대길과 업복이 비장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오랜만의 강렬한 비극이다.


주인공이 죽으니 곧바로 <아이리스>나 <지붕 뚫고 하이킥>과 <추노>를 나란히 비교하는 기사가 떴다. 주인공이 죽으면 다 같은 비극인가? 죽어도 격이 다르게 죽었다. 앞의 두 작품과 <추노>가 단지 주인공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은 <추노>에 대한 모욕이다.


<아이리스>나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경우엔 막판에 뜬금없이 죽었다.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황당한 결말이다. 게다가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산골소녀의 성장기라는 기획의도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갑자기 죽였으므로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다.


반면에 <추노>는 죽음까지가 이야기 구조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뜬금없는 죽음이 아닌 글자 그대로 비극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황당, 분노 등의 감정을 초래했지만 <추노>의 죽음은 슬픔, 안타까움, 연민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오랜만에 비극을 위한 어거지 비극이 아닌, 진짜 비극을 본 것이다.


예컨대, 대길이 태하와 언년을 무사히 보내놓고 최장군이 있는 이천으로 가 이야기가 몽땅 마무리된 후에 갑자기 의문의 화살이 날아와 그를 죽였다면 <아이리스>에 비할 수 있다. 혹은 대길이 막판에 설화에 대한 사랑을 자각하고는 설화와 손 붙잡고 가다가 개똥에 미끌어지면서 돌부리에 찍혀 죽는 결말이라면 <지붕 뚫고 하이킥>에 비할 수 있겠다. 



<지붕 뚫고 하이킥> 결말 논란이 시청자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일부에서 자꾸만 그 결말을 ‘비극’이라고 치장한 데 있었다. 그것은 이미 황당 결말에 상처받은 시청자들을 ‘무작정 해피엔딩만 해달라는 찌질이’, ‘비극을 인정하지 않는 찌질이’로 두 번 죽이는 만행이었다.


대길이 실수로 개똥에 미끌어지면서 돌부리에 찍혀 죽는다는 식의 우연한 사고 결말을, 일부가 ‘인생이 우연이라는 진실을 표현한 것’이라는 식으로 옹호하면서 졸지에 시청자들을 ‘독특한 명작을 감상할 줄 모르는 찌질이’로 만든 것도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런 식의 우연을 상업 드라마의 시청자들에게 갑자기 강요하는 건 작가의 ‘오버’다. 애초에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은 예술영화를 보러가지 상업드라마를 시청하진 않는다.


<추노>는 모처럼 상업드라마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비극을 선사해줬다. 비참하게 죽은 대길, 업복, 천지호 등은 오랫동안 안타까운 이름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심지어 악역인 황철웅도 마지막에 부인 품에서 오열하며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 추노의 엔딩이 특히 절묘한 이유 -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이 비극이면서 해피엔딩이라는 식의 이상한 논리들도 등장했었는데, 이번 <추노>의 결말이야말로 비극과 해피엔딩이 공존하는 차원 높은 것이었다.


<추노>는 캐릭터들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희망’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극중 희망일 뿐만 아니라, 현대의 희망이기도 하고 혹은 현재의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이기도 한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비극과 희망과 메시지가 공존한 것이다.


 

예컨대, 자기 딸이 팔려가도 죽은 듯이 노비로 살겠다던 남자는, 업복이의 죽음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것은 업복이의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의지’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진다는 걸 암시했다. 그 의지는 또 다른 업복이를 만들 것이다. 업복이가 자기는 결코 개죽음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실현된 셈이다. 업복이가 죽기 직전에 땅바닥에 짓이겨지면서 보낸 눈빛은 자기 눈앞의 노비를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보낸 것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의지를 전해준 것이다.


<추노>는 총을 든 초복이와 그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여자아이가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것도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표현했다. 남자 노비보다 한 단계 더 아래인 여성을 내세워 <추노>의 주제의식을 선명히 하고, 우리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행동을 촉구한 것이기도 했다.


송태하의 생사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도 의지를 남겼다. 외국으로 도피하지 않고 조선에 남아 ‘언년, 혜원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 이것도 현재의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바로 이런 것이 여운을 남기는 열린 결말이다. 뜬금없는 교통사고 정지화면의 열린 결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추노>가 사라진 세상이 허전하다. 대길, 천지호, 업복이뿐만 아니라 황철웅에게까지 정이 들었다. 그만큼 캐릭터 표현이 생생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눈부셨다. 비극에 의지를 담아 우리 가슴에 희망을 남기고 떠난 <추노>.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그들은 비록 죽었지만 그들의 꿈은 죽지 않았다. 우리 심장이 뛰고 있으니까. 상처만을 안고 떠난 대길과 업복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