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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부자의탄생 부태희는 왜 욕을 안 먹을까

 

<부자의 탄생> 부태희는 악역이다. 재벌 딸에 안하무인, 명품에만 매달리는 된장녀, 뭐든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속물 캐릭터로 시청자의 미움을 받을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밉상인 것이다.


그런데 욕을 전혀 먹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부태희는 <부자의 탄생>에서 가장 사랑 받는 캐릭터가 됐다. 왜 그럴까?


<부자의 탄생> 13회에 그 이유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나왔다. 부태희는 극 중에서 시골 고아원에 있는 아이의 카드를 맡아왔다. 그 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전해달라는 카드였다. 13회에서 비서가 그 카드를 전해줄 거냐고 묻자 화를 내며 그 카드를 내버렸다. 그리고는 에어로빅을 화려하게 즐긴다.


하지만 결국 쓰레기통에서 그 카드를 다시 빼든다. 눈앞에서 불쌍한 아이가 계속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부태희는 최석봉을 불러내 그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만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부태희에게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아이의 상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여러 가지 인간적인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마음을 보여주면 시청자는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다.



그 캐릭터가 아무리 악역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시청자에게만은 선한 인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든 선한 주인공이 도덕법칙을 다 준수하는 건 아니다. 문제가 있는 성격도 많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근본적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다.


예의범절 무시하는 까칠한 반항 청소년인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가 시청자에게 선한 캐릭터로 인식되는 것은, 그녀가 타인을 생각하는 장면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반대로 효선이 시청자에게 얄밉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타인의 마음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성격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부태희가 보여준 모습은, 위악적으로 행동하지만 자기 눈앞에 있는 노비의 비참한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추노> 대길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이런 캐릭터는 시청자의 욕을 먹지 않는다.


부태희가 상당히 막 나가는 것 같지만 그녀는 사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녀가 화가 났을 때 하는 행동이라고는 고작 케이크를 마구 먹어대는 정도에 불과하다. 남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가 당한다.


일개 평사원에 불과한 최석봉에게 항상 무시당하면서 분개하고, 모처럼 경쟁 기업 커피점을 무너뜨리려 흉계를 꾸몄을 때도 금방 들통 나 경찰서로 끌려가버렸다. 이처럼 무해한 캐릭터이면서 자멸하고 망가지는 인물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욕을 할 이유가 없고 귀엽기만 한 것이다.


또, 부태희는 이중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다. 시원시원하다. 자기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고 처절하게 망가진다. 반면에 서우는 <해피투게더>에서 ‘착한 척, 사랑스러운 척’하며 은근히 문근영 왕따 시키는 이미지로 여성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었고,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같은 성격인 효선을 맡아 더욱 증폭된 욕을 먹었다.(서우의 실제 성격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비쳤다는 말이다) 부태희는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다. 반면에 시청자들이 불편해하는 효선은 과장되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음울하게 느껴진다.



부태희는 극히 단순하기도 하다. 화를 내다가도 칭찬을 들으면 금방 좋아한다. 예컨대, 최석봉의 칭찬을 들었을 때 그랬다. 이런 성격도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경향이 있다. <웃찾사>에서 웅이 엄마가 비슷한 성격을 보여줬었다.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에서 신봉선이 한참 잘 나갈 때도 비슷한 성격을 보여줬다. 단순하고, 1차원적이고, 화를 내다가도 남편의 칭찬 한 마디에 금방 베시시 웃는 모습. 이런 모습은 마치 강아지처럼 사랑스러운 느낌을 준다.


부태희는 재벌2세로서 마치 강자 같지만, 철저히 약자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언제나 안달복달한다. 만약 부태희가 완전한 강자로 남들 위에서 군림했다면 지금처럼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군림하던 이경규가 굴욕당하는 이경규로 변신해 사랑받는 이치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여린 심성에, 당하기만 하는 약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막말을 하고 속물적으로 굴어도 시청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 거기에 때때로 망가지면서 웃음까지 주니 악역이면서도 시청자가 좋아하는 선역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시영이 부태희라는 캐릭터를 워낙 잘 표현했다. 그녀가 사랑스럽고 웃기고 연민이 가는 부잣집 단순녀 부태희를 살렸고, 그 부태희를 통해 배우 이시영이 살았다. 13회에서 아이가 준 카드를 쓰레기통에 내버렸을 때 부태희의 얼굴엔 순간적으로 어두운 빛이 지나갔다. 위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가 사실은 여린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이 잘 표현된 장면이었다. 이시영은 과장된 코미디뿐만 아니라 이런 정서들도 풍부하게 담아내면서 부태희를 살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