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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장윤정 비호감 만든 통한의 선택

 

언제부터인가 장윤정에 대한 기사가 뜨면 무조건 악플이 주르르 달리고 있다. 안 좋은 기사는 물론이고 좋은 내용에도 ‘묻지마’ 악플이 달린다. 노홍철과 헤어졌다는 기사가 떴을 때도 그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악플들이 달렸었다.


바로 대출광고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대부업 광고를 했다며, 극도의 비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마침 <개인의 취향>에서 연예인의 대부업 광고를 꼬집는 내용을 내보내며 장윤정을 더욱 옹색한 처지로 몰아넣기도 했다.


손예진의 집을 담보로 대부업체에게 대출을 받은 봉태규 때문에 손예진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설정이었다. 거기에서 봉태규는 연예인이 광고하길래 믿고 썼는데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며 푸념했다.


이것은 대부업 광고 출연 연예인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장면이었다. 연예인이 대중의 사랑을 이용해 대부업체의 간판 노릇을 하며 서민을 빚의 구렁텅이에 떨어뜨린다는 정서다.


게다가 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유명 대부업체의 상당수가 일본 자본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서민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면서 떼돈을 벌고 있다는 뉴스들이 종종 나온다. 모두 우리 서민들의 피눈물이고 국부유출이다. 이래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했던 스타들이 줄줄이 비호감으로 찍혔던 것이다.


네티즌은 장윤정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다. 돈도 남부럽지 않게 벌고 있으면서 ‘돈독’이 올랐느냐는 비난이 잇따른다.


장윤정에겐 억울한 일이다. 왜냐하면 장윤정이 출연한 광고는 대부업체 광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윤정은 저축은행 광고에 출연했을 뿐이다. 만약 대부업체 광고였다면 장윤정도 출연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윤정이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했다는 악플을 달고 다니는 네티즌들은 잘못된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하지만 장윤정에게도 실수는 있다. 광고내용이 문제였다. 광고는 순전히 대출에만 초점을 맞췄다. 대표 카피도 ‘대출은 ***에서’였다. 즉, 대부업체 광고는 아니라 해도 대출을 권장하는 광고이기는 했던 것이다. 광고 속에서 장윤정은 화사하게 웃으며 대출을 권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권장되는 대출 그 자체다. 오래전부터 민생파탄 얘기가 나오고 암울한 경제전망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수출이 사상최대이고 종합주가가 사상최고점을 찍을 때조차 그런 얘기가 나왔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상최대로 치솟은 가계부채가 그 중요한 이유다. 가계부채가 500조 원 수준일 때도 가계발 경제위기설이 나왔었다. 지금은 700조 원을 돌파한 상태다. 한국의 서민들이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현재 가계의 빚 상환능력이 사상최악이고 800만 명이 한계 신용자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외환위기가 기업부채 때문에 왔다면 이번엔 가계부채 때문에 다시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대출을 늘일 때가 아니라 줄일 때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TV에 나와 대출 받으라고 광고하는 것은, 국민들이 대출을 우습게 여기도록 만들어 대출을 더욱 늘릴 것이다. 그렇게 우습게 대출을 받았다가 국민이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정이 파탄난다면, 대출 받으라고 유혹한 사람에게 도의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거시적인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대출과 신용불량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은 피부로 느껴지는 절실한 문제다. 그러므로 대부업체이든 아니든 대출광고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극심해지는 것이다.


이런 때에 왜 장윤정은 하필이면 대출이 주 내용인 광고에 출연했단 말인가? 대부업체가 아니라 저축은행이라서 안심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장윤정을 비호감으로 만든 통한의 선택이었다. 장윤정이 무엇을 해도 비호감을 표하는 댓글이 따라다니는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밝고 당찬 또순이’ 이미지였던 장윤정이 대출광고 하나로 여기서 글로 표현하기에도 민망한 내용의 안 좋은 이미지를 뒤집어썼다.


스타라면 광고를 하더라도 국민감정과 경제사회분위기를 봐가면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게 수많은 국민들이 베풀어준 사랑에 걸맞는 책임 있는 자세다.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