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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비, 뭘 하든 최악이다?

 

요즘 인터넷에선 비를 욕하는 게 유행이다. 그가 새 노래를 가지고 컴백한 그 순간부터 비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마다 뒷말이 무성하다. 비가 뭘 하든 항상 최악의 순간이었단다.


왜 비는 밉상이 되었을까? 우리 네티즌들은 과대포장된 것을 매우 안 좋아한다.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닌데 미국시장을 뒤흔들었다는 식으로 알려졌을 때, 우리 네티즌들이 보인 불쾌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도 과대포장된 면이 있다. 방송사 프로그램들은 비를 월드스타라는 캐릭터로 내보낸다. 그런데 네티즌들이 봤을 때 비는 월드스타라고 하기가 좀 힘들다.


비가 출연한 영화가 그렇게 크게 히트한 것도 아니고, 작품 자체의 무게감도 떨어졌었다. B급 액션영화의 B급 액션배우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런데 방송사 프로그램들이 비를 마치 미국시장을 제패한 대스타인양 떠받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이 발생했다.


비가 월드투어를 다니는 세계적 가수라고 포장된 것에 대해서도 반감이 있다. 비의 노래 중에 엄청난 히트곡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의 가창력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런 현실에서 비가 영웅으로 떠받들어질수록 반감은 커져간다.


비의 신곡 무대가 방송됐을 때 격렬한 비난이 터져 나온 것도 그런 포장과 관련이 깊다. 대중은 비의 새 무대에서 월드스타라는 포장에 값하는 음악적 카리스마를 기대했다. 그런데 비가 보여준 것은 노출 웨이브였다. 네티즌은 이것밖에 안 되냐며 격하게 실망했다.



이것은 한국 인터넷 여론을 남성 네티즌이 주도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 프로그램 속에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비에게 열광한다. 만약 남성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 업적, 실력을 비가 보인다면 비록 속이 쓰리더라도 비를 향한 환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환호할 때마다 뭔가 부당한 일이 벌어진다는 울화가 생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그 짜증을 표출하는 것이다. ‘비가 그렇게 대단해? 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야!’라면서.


비가 보인 태도도 문제가 됐다. 비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 월드스타라는 자신을 향한 칭송이 나올 때, 예컨대 김윤진은 굉장히 송구스런 표정을 짓지만 비는 당연하다는 듯이 씩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과대포장 됐다는 느낌 때문에 불편했던 네티즌들은 그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고 더욱 분노한다.


그래서 비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사사건건 눈에 불을 켜고 비난할 거리를 찾게 된 것이다. 비가 박진영을 뛰어넘었다고 해서 건방지다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나중에 그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어이가 없었다. 박진영이란 인간 자체를 총체적으로 뛰어넘었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박진영이 가수로서 못 받은 상을 받아봤다며 농담을 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잡담에까지 욕을 먹을 정도로 비는 네티즌에게 찍혔다. 그야말로 비가 뭘 하든 얄밉다는 말을 듣는 상황이다.


비로선 억울한 일이다. 냉정히 따져보자. 비가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무슨 잘못을 했나? 그냥 비를 보면 웬지 기분이 나쁘다는 것뿐이지, 비가 실질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다.


방송 프로그램 속에서 MC와 패널들이 비를 월드스타라고 떠받드는 것은 비가 시킨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 조금만 이름이 알려져도 월드스타라고 난리를 치는 것은 한국 방송계의 고질병이다. 그것이 불편하면 방송계의 문화를 비판할 일이지 비를 욕할 일은 아니다.


비의 문제라면 사람들에게 건방지게 보이는 그 자신만만한 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도 달리 보면 건방짐이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다. 비는 어쨌든 초인적인 자기관리를 통해 하나의 성취를 이룬 사람이고, 은연중에 자신감이 풍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가 보이는 자신감이 어쩌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를 버티게 한 단 하나의 힘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서양인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해선,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마인드컨트롤을 통해 만들어낸 자신감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비가 보이는 자신감은 어쩌면 그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생존의 방편일 수 있다.



물론 비는 1급 월드스타도 아니고 최고의 뮤지션도 아니다. 그건 아마도 누구보다 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비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를 보면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분명히 전해진다.


그런 비를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일 순 없을까? 자신감에 충만한 한 청년의 분투에 박수를 쳐줄 순 없을까? 그렇게 사사건건 사람을 탈탈 털어가며 처벌해야만 속이 시원한가? 비를 조금 더 여유있는 시선으로 봐줄 필요가 있다.


한편, 툭하면 월드스타 타령을 하며 영웅만들기에 몰두하는 우리 방송, 언론계는 반성해야 한다. 별것 아닌 실적과 실력을 가지고 마치 세계 1위라도 된 듯이 호들갑을 떨며 해당 연예인을 떠받드는 것은 매체의 장사엔 이득이 되겠지만 연예인에겐 독이 되는 일이다. 대중은 반드시 반감을 가지게 되어있다. 매체가 인위적으로 떠받들면 대중은 그 이상으로 밟는 것이 기본 패턴이다. 그러니, 월드스타 호들갑은 이제 그만.


또, 비는 어쨌든 이곳이 ‘한국’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잘난 척하거나 거만한 사람을 아주 싫어한다. 겸손한 사람이 사랑받는 곳이 한국이다. 겸손함이 자신없음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비는 미국식 자신감을 한국시장에선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항상 겸손하고 송구해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그래야 한국 네티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