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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남자의자격, 눈물나게 한 이경규

 

밥 먹으면서 보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의 강의를 보면서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났다. 역시 이경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자의 자격>에서 돌아가면서 강의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대됐던 것이 이경규의 순서였다. 그런 기대를 한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거꾸로 이경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종의 시험대에 올랐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멤버들에겐 그런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덜 하다. 탤런트나 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개그맨인 이윤석에게도 웃길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 김국진도 이경규보다는 기대를 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경규의 입장은 다른 멤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경규는 현재 유재석, 강호동과 함께 ‘3톱’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진행능력이 아닌 순수한 입담으로는 사실상 원톱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주어진 공개강연의 기회란 단순히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혹독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입’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임을 증명해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압박이다. 게다가 주어진 설정도, 대본도, 교재도 없이 혼자서 떠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평소에 강단에 서는 이윤석이 교재 가지고 강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 압박을 이겨내고, 과연 ‘국민MC' 이경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이것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래서 지난 주부터 <남자의 자격> 이경규 강의 편을 기다렸다.


이경규는 운도 좋지 않았다. 6번 째 강사로 뽑힌 것이다. 청중들은 아무런 상황 변화 없이 남자 혼자서 오랫동안 얘기하는 것을 5번 들은 후에 이경규를 맞아야 했다. 누구라도 맥 빠질 시간대다. 대기하는 동안 이경규는 생방송보다 더 떨린다면서 잔뜩 긴장하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서자마자 이경규의 천부적인 재능이 달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있을 때 그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보인다. 대뜸 호통부터 치며 상황을 장악하고 두런두런 입담을 시작했다. 본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편안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게 하는 일이지만, 이경규처럼 그렇게 매 문장마다 빵 빵 터뜨릴 순 없다.


이경규의 재치 넘치는 조크가 계속 이어지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는 뻔뻔하게도 청중들에게 기립박수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무대를 장악한 그의 자신감으로 비쳤다.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나왔으리라.


본 강연에 들어가서도 폭소는 계속됐다. 지리산에 올라갈 때 화가 났던 이유를 설명하며, ‘왜? 다시 내려와야 되잖아!’라고 할 때 터질 듯이 웃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경규는 칠판이 뒤로 밀리는 돌방상황도 웃음으로 만들면서 감탄을 줬다.



물론 여기서 끝이면 국민MC가 아니다. 30분에 걸친 완결적인 얘기를 할 때 국민MC가 스탠딩 개그만 하고 내려올 순 없다. 웃음에 더해 의미와 감동도 만들어내야 한다. 당연히, 이경규는 해냈다.


지리산 에피소드로 웃음의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함부로 인생의 짐을 내려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툭 던져 청중에게서 탄성이 나오게 만들었다. ‘난 내 숨이 다 하는 날까지 그 짐을 매고 달리겠다’라고 해서 연이어 박수를 받았다.


<복수혈전> 얘기로 빵 터뜨린 이후에도 그것을 18년에 걸친 그의 영화에 대한 의지, 30년에 걸친 방송에 대한 의지로 연결시켜 숙연함을 느끼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떤 어려움과 굴욕이 있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하며 그것을 견디라는 주문으로 강연을 끝맺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겠으나 영화참패와 방송 침체기를 겪고 여기까지 버텨온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그 울림이 컸다. 이야말로 어른만이 청년에게 해줄 수 있는 몫이리라.  이경규는 개그맨 국민MC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자신에게 모아졌던 그 혹독한 기대를 200% 만족시키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역시 이경규!’라는 감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