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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비의 사진들, 민망하고 괴롭다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봤다. 기사 제목이 아래와 같았다.


비, 뻔한 해명이 안타까운 까닭?…"그가 밝혀야할 몇가지"


이 제목을 보고 비에게 무슨 범죄 의혹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 기사를 클릭해보니 전지현과 사귄다는 스캔들 얘기였다. 비의 부인에 대한 반박기사였다.


어쩌라고?


남이야 사귀던 말던 기자가 무슨 상관인가? 비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기사는 너무나 당당하게 비에게 ‘밝혀야 할 몇 가지’가 있다며 채근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사는 비의 해명을 반박한다면서 비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들을 공개하고, 비가 전지현의 집에 찾아가는 길에 뺑뺑 돌아서 갔다며 사적인 행적까지 공개했다. 이건 폭력이다. 남의 사생활을 이렇게 멋대로 몰래 알아내서 공표할 권리를 누가 줬단 말인가. 기사가 공개한 비의 사진들이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숨이 막혀왔다. 이런 사진은 불쾌감만 초래하는 공해다.


기사는 ‘결국 열애 부인으로 두 사람의 사랑도 빛이 바랬지만 비와 전지현이 떳떳한 한류커플이 되길 바란다’며 두 사람에게 재를 뿌리고 끝을 맺었다. 빛이 바랬다는 악담을 퍼부은 것이다.


정말 황당하다. 멋대로 남의 사생활을 터뜨려 놓고 그것을 부정하니까 사랑에 빛이 바랬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인지 모르겠다.


물론 언론이 남의 사생활을 캐도 괜찮을 때가 있긴 하다. 요즘 화제가 되는 검사 스폰서 사건이 좋은 예다. 권력을 가진 사회 지도층 인사들, 즉 공인에 대해선 사생활 속에서 접대, 비리, 상납, 부패 등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국가기강을 위해서 언론의 사생활 침해가 용인된다.


그 이외의 시민에 대해선 아무리 언론이라 해도 멋대로 사생활을 캐고 공표해선 안 된다. 흔히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는데, 누가 국민들에게 개인의 사생활을 알 권리를 부여했단 말인가? 누구에게도 그런 권리 따윈 없다.


국민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사생활을 캐는 건 집단의 이름을 내건 폭력에 다름 아니다. 비가 정말로 전지현을 사귀든 안 사귀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비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해명을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비의 자유다. 해명을 안 하는 것도 비의 자유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비가 밝혀야 할 몇 가지를 그렇게 당당하게 요구한단 말인가?



이 사건을 타블로에 대한 학력검증 사태와 연결 짓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잘못됐다. 타블로 학력 관련 기사엔 항상 ‘타블로는 음악하는 사람인데 학력 같은 사생활을 왜 캐는 거냐’는 댓글이 붙는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타블로는 경우가 다른 것이, 미국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으로부터 그가 결정적인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명문대를 나온 천재청년으로 소개되면서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학력관련 진실은 타블로가 반드시 확인해줘야 할 공적인 사안이 되었다.


반면에 비의 경우는 열애 문제로 그 어떤 이익을 얻은 바도 없고, 열애 마케팅을 한 바도 없다. 순수하게 영화활동과 음악활동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비에게 이성문제는 온전한 사생활이다. 사람을 사귀든 안 사귀든, 공개하든 안 하든 전적으로 자기 마음인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든, 언론이든, 그 어떤 명목으로라도 비 자신의 의사에 반해 그의 사생활을 까발릴 수 없고, 죄를 추궁하듯이 해명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 신문기사는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진실이라도 파헤친 것처럼 의기양양해하면서 비의 사생활을 여전히 유포하고, 비를 추궁하고 있었다.


비도 대한민국의 시민이고 나도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비의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건 같은 시민인 나의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과 같다.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진이 민망하고 숨막혔던 것이다. 마치 나의 사적인 모습이 그렇게 까발려진 것 같아서.


부탁한다. 이렇게 사생활 까발리는 데 몰두할 정력이 있으면 그것을 국회의원 등 권력을 가진 공인들의 사적 비리를 캐는데 써달라. 그러면 나도 기사에 실린 사진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적인 사진을 마구 터뜨리는 광경은 보기가 너무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