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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노출녀 ‘씹는’ 재미를 선사해준 월드컵?

 

각종 노출녀들이 이번 월드컵 기간에 집중 ‘까임’을 당했다. 월드컵 응원을 빙자해 한번 떠보겠다는 얄미운 속셈에 사람들이 짜증났기 때문이다. 처음엔 순수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들이 대부분 연예인 지망생이거나 기획사 소속 연예인이라고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


노출녀들에 대한 환멸은 경기 중계 중에 잠깐 잡힌 이른바 ‘패널티녀’에 대한 열광으로도 표출됐다. 그 여성은 순수하게 한국팀을 응원하는 사람처럼 보여서, 응원 빙자 노출 마케팅녀들에 치를 떨던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만약 노출녀 성토 시국이 아니었다면 페널티녀의 부각도 없었을 것이다.


상업적 의도를 가지고 벗어젖히는 여성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맞다. 연예인 지망생과 기획사들의 장삿속은 거리축제를 상업주의로 오염시키고 있다. 망사한복에 티팬티는 민폐노출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축제를 망친 것이 노출녀들뿐이었을까?


거리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폭주하는 군중이다. 지나가는 차를 가로막고, 수십 명이 차를 에워싸 두들기거나 심지어 남의 차 위에 올라타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그런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한 마디로 ‘미친 *들’ 같았다.


그리스 전이 끝난 후에는, 20여 명의 남성들이 여성이 운전하는 차를 에워싸고 ‘여자다! 여자다!’하면서 차체를 두들긴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정말 무서운 공포를 느끼게 된다. 정말 미친 짓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대표적 꼴불견으로 집중 까임을 당한 노출녀들과 이런 군중의 폭력성 중에 어느 쪽이 더 실질적인 민폐를 끼쳤을까? 당연히 후자다. 노출녀는 타인을 위협하지도 않고 공포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꼴 보기 싫을 뿐이다. 반면에 폭주하는 군중은 공포 그 자체다.


‘키보드 워리어’들의 준동도 축제를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특히, 남편이 실수했다는 이유로 해당 선수 부인의 홈피가 습격당한 사건은 길이길이 남을 추태였다. 경기 중에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사이트로 몰려다니며 쑥밭을 만든 워리어들도 짜증을 보탰다.


방송사의 독점욕과 대자본의 상업주의도 마찬가지로 짜증을 유발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시장화라는 근본적인 구조와 연관된 것이어서 사안의 경중을 따졌을 때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그다음으로는 군중의 폭주와 증오 표출이 심각한 문제다. 굳이 따지자면 노출녀의 준동은 사실은 가장 가벼운 사안이었다.


연예인 지망생들의 노출 마케팅을 옹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도 남 못지않게 그들이 꼴 보기 싫다. 그건 그거고, 여기서 지적하는 건 왜 하필 노출녀들만 집중 까임을 당하며, 마치 그들이 월드컵 축제를 망치는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성토당해야 했는가이다.



- 네티즌과 언론이 노출녀를 표적으로 만들었다 -


애초에 노출녀들을 띄운 건 네티즌 자신과 언론이었다. 2002년에 한 노출녀를 네티즌이 스타로 만들었고, 거기에서 상업적 기회를 포착한 연예기획사와 지망생들, 그리고 언론이 뛰어들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여자들이 섹시노출복장으로 거리에 나서고, 네티즌과 언론이 이를 맹렬히 화보화하며 대서특필한다. 거리의 노출녀로도 부족해 연예기획사가 배포한 스튜디오 노출녀 사진도 월드컵 응원녀 화보로 뿌려댄다. 네티즌은 그 화보들에 열광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월드컵 기간 동안 노출녀 화보가 경기화보 못지않게 인터넷 뉴스 지면을 뒤덮는다. 인터넷이 노출 응원녀로 도배되다시피 하자 사람들이 짜증을 낸다. 마치 노출녀가 월드컵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듯한 느낌이 된다.


그러자 언론은 이번엔 노출녀 비판 장사를 시작한다. 노출녀를 축제 망치는 주범으로 내세워 대중의 증오에 영합하는 것이다. 네티즌은 맹렬히 클릭하며 노출녀들을 성토한다. 자연스럽게 노출녀가 만악의 근원으로 무대 위에 서게 된다.


그러는 한편 노출녀와 대비될 듯한 참신녀가 나타나면 다시 쇼가 계속 된다. 특정 컨셉의 걸그룹이 싫증났을 때 새로운 컨셉의 걸그룹이 각광을 받는 이치와 같다. 어떤 참신녀에 네티즌이 관심을 보이면, 즉각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참신녀 마케팅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BBC녀 같은 억지 참신녀 신드롬도 만들어지게 된다.


이런 식이다. 노출녀 사태는 대체로 이렇게 진행되어왔다. 노출녀가 거리에서 ‘깽판’을 치거나 사람들을 위협한 적은 없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그녀들이 집중 까임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이건 여성을 ‘씹어 돌리는’ 걸 낙으로 삼는 인터넷 여론의 기본 구조가 월드컵 이벤트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들이다. 그들은 인터넷에 모여 여성의 외모를 부위별로 품평하고, ‘오크녀’를 능멸하고, 건방지거나 재수 없는 ‘00녀’들을 응징한다. 실제 현실에서 중범죄자, 흉악범죄자들은 대체로 남성들이지만 인터넷에선 얄미운 ‘00녀’들이 천인공노할 대역죄인으로 씹힌다. 그녀들은 졸지에 사회악의 상징이 되고 인터넷 여론은 그녀들에게 ‘매장’을 선고한다. 언론은 이를 충실히 중계하며 장사에 나선다.


월드컵 노출녀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는 구조로 전개됐다. 평소에 여성 연예인과 사회인 ‘00녀’를 씹던 여론이 월드컵을 맞아 응원녀를 씹는 모드로 전환됐던 것이다. 말하자면 월드컵이 노출녀를 통쾌하게 씹어댈 기회를 줌으로서 ‘00녀’를 찾는 대중과 매체에 숨통을 틔워준 셈이라고나 할까?


나도 남 못지않게 응원 빙자 노출녀들이 짜증나는 사람이지만, 네티즌과 언론과 노출녀가 동시에 공모한 노출녀 신드롬에서 네티즌 언론만 쏙 빠지고 노출녀만 까이는 걸 보니 노출녀가 은근 불쌍해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