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동이, 이소연이 이런 배우였다니

 

나에게 이소연은 비호감 배우였다. 이소연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싫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소연이 주연배우감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객관적으로도 이소연은 존재감 없는 배우였다. 도시적이고 또렷한 이목구비와 늘씬한 몸매로 주연들의 배경을 장식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녀가 한 작품은 많지만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다.


헐리우드 상업 영화를 보면 금발 머리에 늘씬한 여배우들이 주연들의 배경에 지나다닌다. 이소연은 그런 정도의 느낌을 주는 배우였다. 화면을 장식하는 꽃 같은 느낌. 그러나 작품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그녀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천사의 유혹>일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모처럼 성공한 작품의 원톱을 맡았다. 하지만 <천사의 유혹>은 기대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녀도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천사의 유혹>은 당시 장안을 뜨겁게 달궜던 복수 막장드라마 시리즈였다. <아내의 유혹>처럼 독한 설정과 빠른 전개로 무장했다. 그런데도 <아내의 유혹>에 훨씬 못 미치는 성공을 거둔 이유로 난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 부족을 꼽았었다.


원톱인 이소연이 주연급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작품의 힘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소연은 그 막중한 비중에도 불구하고 장서희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


극의 주연은 단지 예쁘거나 잘 생긴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연에게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이목을 잡아끄는 힘, 그것이 주연의 카리스마다. 또 주연은 극에 안정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고현정이 <선덕여왕>에서, 전광렬은 <왕과나>에서 그런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당시 이 둘은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으로 주연을 포함한 모든 배역을 ‘올킬’하고 작품을 장악했었다. 이소연은 이런 종류의 존재감과는 거리가 먼, 그저 예쁘장한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가졌을 뿐인 배우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 이소연의 짜릿한 반전 -


그런 이소연이 <동이>에서 화려한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소연이 장희빈역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볼 때마다 놀랍다. 이소연이 이렇게 주연의 존재감을 뿜어내는 배우일 줄은 정말 몰랐다.


이소연의 장희빈은 완벽하다. 물론 다른 사람이 배역을 맡았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소화했겠지만, 이소연은 자기의 방식으로 완벽한 장희빈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이소연이 아닌 <동이> 속 장희빈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동이>의 장희빈은 처음엔 정의롭고 현명하다가 점차 사악하고 교활해지는 인물이다. 이소연은 그런 장희빈을 초반에 광명정대했던 모습부터 후반에 음모가로 변모한 모습까지 생생하게 구현해주고 있다.


초반에 장희빈은 일국의 국모에 어울리는 기품을 보여줬어야 했다. 이소연은 지금까지 섹시하거나 앙칼진 이미지를 많이 보여줬었기 때문에 그런 기품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소연은 정말 ‘왕비감’으로 보였다.


<동이> 중반에 장희재의 모략을 알게 된 후 ‘다크 장희빈’으로 변모할 때의 그 극적인 심경 변화도 절절하게 표현했다. 숙종의 사랑이 자신에게서 떠난 것을 느낀 후 “더 이상 아파할 가슴이 남아있지 않”다며 슬퍼하는 모습에서도 이소연의 힘이 느껴졌다.


이번 주에 그녀는 동이에게 “나를 넘어서고 싶다면 ... 다신 그렇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지 말거라. 알겠느냐 이것은 겨우 시작일 테니 말이다”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선덕여왕>의 미실을 방불케 하는 카리스마였다.


<동이>에선 작품이 시작된 이래 위기감을 느낄 수 없었다. 동이가 모든 고난을 너무 쉽게 이겨냈기 때문이다. 지난 주부터 이번 주에 걸쳐 처음으로 위기감이 느껴진다. 그런 위기감을 만든 주체가 바로 장희빈이다. 남인 음모가 모두와 장희재를 합친 것보다 더욱 큰 악역의 역할을 장희빈이 맡고 있다. 이소연의 역량은 그 역할을 소화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동이>를 보며 또 놀란 것은, 이소연이 ‘주연급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여태까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었다.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전혀 꽃미남이 아닌 이선균이 꽃미남급 대우를 받는 비밀이 목소리에 있다. 얼굴이 주연급이어도 목소리가 주연급이 아니면 극의 중심에 서기 힘들다. 이소연이 <동이>에서 들려주고 있는 목소리는 작품을 지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연급의 목소리다. 그것이 이소연의 카리스마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가히 이소연의 화려한 반전, 여배우의 재발견이다. 누가 됐든 이렇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람을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경시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우뚝 서는 모습은 짜릿하다. 이소연이야말로 <동이> 최대의 수혜자라 할 만하다. 질투로 장렬하게 파멸해가는 그녀의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