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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1박2일의 무식이 위험하다

 

<1박2일>은 이번 회에 저녁 식사 복불복으로 속담 퀴즈를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의 일반적인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멤버들은 그걸 틀렸다.


‘되로 주고’ 다음에 ‘되로 받고’가 나오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조차 못 맞혔다.  ‘어물전 망신은’ 다음에는 ‘꼴뚜기 망신보다 못하다’라는 황당한 답이 나왔다. 멤버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속담 퀴즈가 끝난 이후엔 사자성어 퀴즈를 했다. 이번엔 ‘마이동풍’이 아닌 ‘마이아파’ ,‘무위도식’이 아닌 ‘무위타이’, ‘용두사미’가 아닌 ‘용두마차’가 나왔다. 멤버들은 이번에도 쓰러지면서까지 폭소를 터뜨렸다. 복불복이 마무리된 이후엔 재미있는 표현들이라며 이번에 나온 오답들을 다시 강조해주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한 복볼복 퀴즈가 상당히 재미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시청자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질타하는 댓글이 다수다. 이렇게 프로그램과 시청자의 느낌이 벌어지면, 즉 공감대가 떨어지게 되면 위험하다.



- 지나친 무식은 위험하다 -


<1박2일>이 쉬운 퀴즈를 할 때마다 설정 논란이 일어난다. 멤버들이 틀리는 것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이냐 아니면 일부러 틀리는 것이냐는 논란이다. 그건 그만큼 시청자들이 리얼리티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리얼리티 문제 때문에 한 방에 ‘훅’ 간 프로그램으로는 <패밀리가 떴다>를 들 수 있겠다. 한때 일세를 풍미했던 짝짓기 포맷 버라이어티도 리얼리티 문제로 사라져버렸다. 대신에 보다 리얼리티가 강화된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왔다.


그러므로 현재의 버라이어티에 리얼리티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1박2일>처럼 소탈함, 인간미 등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엔 더욱 그렇다. 멤버들이 정말로 ‘바보’인 건지, 아니면 영악하게 바보인 척하며 시청자를 속이는 건지, 전자냐 후자냐에 따라 프로그램은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나친 무식은 위험하다. <1박2일> 멤버들이 쉬운 퀴즈를 어처구니없이 틀리는 것은 단지 안 웃기는 차원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허물고 그리하여 프로그램 자체에 위협이 될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홍수아도 캐나다 아래에 있고 대통령이 오바마인 나라가 무엇이냐는 퀴즈에 태국, 방글라데시라도 답해서 비난을 산 적이 있다. 이렇게 과장된 무식은 시청자를 불유쾌하게 만들고 스스로에게도 해가 되는 법이다. 한선화의 백지 캐릭터도 초기엔 사랑스러웠지만 너무나 억지스럽게 무식을 가장하자 그 매력이 사라져버렸다.



- 무식보다는 진실 -


<1박2일>은 김C가 빠지면서 ‘진실성’의 느낌을 담보하는 중대한 축을 잃었다. 남아있는 사람은 모두 웃기는 데에만 최선을 다 하는 연예인들이다. 김C는 웃기려는 노력을 안 해서 오히려 프로그램을 살렸다. 남은 멤버들이 웃기는 데에만 집착하면, 자칫 선을 넘어 오히려 프로그램에 독이 될 수 있다.


인간미, 소탈함, 공감 등의 코드가 약해지면 멤버들이 제 아무리 웃겨도 평범한 코미디극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1박2일>을 지금까지 받친 건 코미디가 아니었다. 신뢰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미라는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작위적인 무식으로 그 신뢰성이 흔들리면 <1박2일>을 지탱해온 근간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1박2일>의 퀴즈에선 김종민과 함께 가장 웃기는 사람이 가장 큰 구멍이다. 바로 이수근이다. 이수근은 과거부터 쉬운 퀴즈를 할 때마다 어처구니없는 오답을 잘 내놨었다. 웃기는 데에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이번에도 이수근이 오답을 주도했다. 이수근이 황당한 오답을 낼 때마다 프로그램이 흔들리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물론 이수근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퀴즈를 할 때면 모두가 잠재적 구멍이다.


그렇지 않아도 <1박2일>은 지금 김C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 때다. 그것은 신뢰성, 인간적인 느낌, 소탈함, 진실성 등을 지켜가야 한다는 뜻이다. <1박2일>이 지금처럼 억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김C의 빈자리를 더욱 키우는 길이다. 이건 웃기는 상황극이나 한 멤버의 개인기로 상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 가세한 김종민이 신뢰성의 느낌을 주지 못하는 데다가, MC몽 문제까지 겹친 상황이다.


최근에 <1박2일>은 그 존재감에서 <남자의 자격>에 밀리고 있다. <1박2일>이 여전히 그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것은 시청 프로그램을 잘 바꾸지 않는 중장년층의 특성, 경쟁 프로그램들의 약세, 주말 저녁 가족 포맷의 유효성 등의 효과라고 생각된다. 프로그램의 힘 자체는 최근 확실히 약화되고 있다. 제작진은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물론 급박하게 촬영을 하다보면 정말로 알던 것도 틀릴 수 있다. 진실은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쉬운 퀴즈만 하면 <1박2일>은 논란에 휩싸인다. ‘억지 무식’의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쉬운 퀴즈를 자제하면 된다. 맞히면 아무 느낌이 없고, 틀리면 안 웃길 뿐만 아니라 논란만 양산하는데 굳이 남발할 이유가 없다.


작년 여름 이번 회와 같이 비가 오던 <1박2일>에서, 모든 멤버들이 웃기려도 ‘오버’했지만 아무도 못 웃기고 무덤덤하게 나섰던 김C가 빵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실수를 하고, 엉성하게 행동하는 것도 이렇게 진실성이 뒷받침돼야 웃기는 법이다. 작위적인 무식은 그 받침을 빼버린다. 그러면 멤버와 제작진만 웃는 방송이 된다.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