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동이, 노골적인 장희빈 찌질이 만들기

 

<동이> 37회에선 드디어 장희빈의 음모가 숙종에게 발각되며 몰락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장희빈은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숙종은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이런 널 보게 하지 마라. 이렇게까지 망가진 널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정말 장희빈의 현재를 정확하게 표현한 대사였다. 장희빈을 재발견하겠다던 <동이>는 재발견은커녕 최후까지 찌질이 캐릭터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 망가진 장희빈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찌질이란 소인배를 말한다. 대의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사익의 차원에서만 머물러 있는 인물이다. 찌질이 캐릭터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데, 그 이익이란 흔히 돈 혹은 권력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최고의 관심사인 인물들이다.


반대편엔 ‘대인배’ 캐릭터가 있다. 대인배들은 대의를 생각하고,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안위나 공동체의 안위를 더 중시하며, 자신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자신을 초개처럼 여긴다.



대표적인 대인배 캐릭터로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그려진 이순신 장군을 들 수 있겠다. 대표적인 소인배들은 식민사관에서 그려진 조선의 당쟁 선비들을 들 수 있다. 식민사관은 조선역사와 한민족을 찌질이로 격하시키기 위해 당쟁을 권력다툼으로 만들었다. 자기 권력밖에 모르는 무리들이 무려 수백년 간이나 진흙탕 싸움을 벌인 찌질한 역사, 찌질한 나라라는 것이다.


<동이>가 장희빈과 남인들을 그리는 방식이 바로 이렇다. 장희빈은 찌질한 악녀일 뿐이다. 심지어 자기 이익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넘길 태세가 되어있다. 남인의 영수라는 자는 장희빈이 군사기밀을 넘긴다고 할 때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대의를 위한 기개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소인배로 그린 것이다.


정말로 그런 소인배들이 주야장천 진흙탕 싸움을 벌인 찌질한 나라였다면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극이 인물들을 찌질하게 그리면, 작품의 크기가 작아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도 작아진다. 일본은 자기네들의 근대사를 그릴 때, 보수파인 막부군이나 진보파인 유신군을 모두 대의를 추구하는 인물들로 표현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작품에 드라마틱한 서사성이 생기고, 그 품격이 올라가며 일본의 역사도 위대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동이>는 장희빈을 최후까지 찌질이 캐릭터로 그리며 그 반대로 갔다. 숙종과 장희빈이 37회에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도 그런 성격이 분명해진다.


“왜 그랬느냐?”

“그것을 정녕 몰라 물으십니까? 누구나 그러하듯 제가 가진 힘으로 제자리를 지키려 한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모든 힘 가진 자들이 하는 일 아닙니까?”

“중전이란 그 자리가 그리 중요한 게냐?”

“권력을 얻는 데 옳고 그른 것이 있습니까, 전하? 힘을 가진 자가 옳고 갖지 못한 자는 그른 것. 그것이 권력입니다.”


오직 권력뿐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 자신의 안위와 이익 외에는 아무 것도 안중에 없는 한 찌질이의 비참한 몰락. 제작진은 이런 대사를 통해 정치의 속성을 비판적으로 드러냈다고 혹시 자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정치의 가장 천박한 속성에 불과하다. 정치는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려는 노력이다. 그것을 단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소인배의 정치관에 다름 아니다. 이런 수준에 머무른 캐릭터는 찌질하고, 대립을 그 정도의 지평에서만 펼쳐보인 작품도 찌질하며, 그런 작품에 의해 그려진 우리 역사도 찌질해진다.



남인도 철저히 바닥을 드러냈다. 장희빈이 위험에 처하자 냉혹하게 장희빈과 손을 끊은 것이다. ‘의리’라는 깡패에게 있는 가치조차 망각한 최악의 찌질이 집단으로 그려졌다. 장희빈은 콕 찍어 묻는다.


“살기 위해서 내 손을 놓겠다?”


남인 영수는 그렇다고 답한다. 권력자에게만 충성하는 것이 정치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자기들의 안위, 권력만 생각하는 캐릭터들의 찌질한 아귀다툼이다. 남인은 장희빈과 완전히 손을 끊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차기권력(세자)의 모후이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정략적 설정뿐인 것이다.


모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장편사극인데 이렇게 찌질이들이 범람하는 궁중 치정극에 머물고 있는 것은 정말 아쉽다. 난 숙종과 동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하이틴 로맨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런 로맨스를 그리면서도 장희빈과 남인들을 보다 큰 인물들로 묘사할 길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남인과 장희빈이 손을 끊는 것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는 남인에게 장희빈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버리라고 요청하는 형식이었다면 인물들의 의기나 비장함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면 <동이>는 훨씬 ‘멋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찌질이로 스러져가는 장희빈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