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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1박2일, 런닝맨, 뜨거운형제들, 약세들의 뜨거운 격돌

 

 바야흐로 예능계의 최대 격전장인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다시 전면전이 시작됐다. 일요예능 삼국지 2차전이다. 1차전은 KBS와 SBS의 압승, MBC의 참패였다. 이번엔 어떻게 될까?


 1차전의 영웅은 강호동과 유재석, 그리고 이경규였다. 강호동의 <1박2일>이 압도적인 위세로 군림했고, 유재석의 <패밀리가 떴다>가 호각지세로 맞섰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군단 전체가 궤멸했다. MBC 입장에서 보면 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로 기억될 만한 이경규와 탁재훈의 자리바꿈 이후, KBS로 건너간 이경규가 <남자의 자격>으로 KBS의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1차전의 결과로 강호동과 유재석은 KBS와 SBS에서 각각 연예대상을 나눠가졌다. <패밀리가 떴다>가 사라진 후 올해 전반기에 전개된 과도기에는 KBS가 경쟁상대 없는 단독 패자로 우뚝 섰다. <패밀리가 떴다2>마저 궤멸하는 바람에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의 독주를 견제할 세력이 사라진 것이다. 전선엔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여름, 새롭게 편성한 군단을 이끌고 MBC와 SBS가 포격을 개시하며 2차전의 막이 오른 것이다. MBC는 <뜨거운 형제들>이고 SBS는 <런닝맨>과 <영웅호걸>이다. 하늘도 이들을 돕는 것일까? 마침 <1박2일>이 내부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그리하여 일요예능 삼국지 2차전은 점입가경의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 불안한 KBS -


 <1박2일>에는 원래부터 불안요인이 잠재해 있었다. 바로 포맷의 식상함이다. 6형제가 시골에 가서 복불복하고 밥 먹고 잠을 잔다는 극히 단순한 내용이 매주 반복됐다. 그런 불안요인을 잠재운 건 멤버들이 전해주는 따스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변화가 찾아왔다. <1박2일>의 진솔함을 책임지던 김C가 하차한 것이다. 그러자 <1박2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장 잠복해있던 불안요인이 현실화됐다. 시청자들이 식상함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김C를 대신해야 할 김종민이 시청자 원성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더욱 불운하게도 MC몽의 병역기피 의혹까지 터졌다. 심지어 KBS 파업의 타격까지 발생했다. <1박2일>은 위기에 직면했다.


 물론 아직까지 KBS의 위상은 굳건하다. <1박2일>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고 특히 <남자의 자격>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남자의 자격>은 자극적인 웃음을 주지 않는 대신에 ‘찌질한’ 아저씨들의 우애와 도전을 보여줌으로서 소시민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일요일 저녁 가족예능에 적절한 내용이다. 그리하여 당장 1위의 자리가 흔들리진 않겠지만, 어쨌든 올 전반기 단독질주를 즐길 때보다 불안해진 건 사실이다.



- 도전의 MBC -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백약이 무효로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었다. 그래서 꺼내든 비책이 공익성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먹히지 않았다. 이번에 새롭게 출격시킨 <뜨거운 형제들>이 내세우는 건 공익성 기름기(?)를 완전히 뺀 ‘묻지마 웃음’이다. 형제들이 묻지마 웃음이라는 신병기를 들고 고지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일단 시선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뜨거운 형제들> 아바타 시리즈는 시청자들을 웃음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박명수는 유재석 없이도 웃기기 시작했고, 탁재훈도 개그본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말 오랜만에 시청률을 두 자리수대로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승세를 굳힌 건 아니다. 미래가 불안하다. <뜨거운 형제들>은 주로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이 적중했을 때는 가공할 만한 웃음이 터진다. 그렇지 못할 때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썰렁한 내용이 된다. 즉, 웃음의 강도는 높으나 그것이 일회적이고 재생산의 기반이 취약한 것이다.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은 그렇게 웃기지는 않지만 일정한 재미를 재생산하는 안정적인 테마와 캐릭터 관계를 보유했었다. <뜨거운 형제들>에는 그런 것이 없다.


 노유민이 불과 두 달 만에 하차한 일도 <뜨거운 형제들>의 그런 한계를 잘 보여준다. 개인기 위주였기 때문에 특정인의 단점이 극단적으로 부각됐고,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 포맷으론 장기전에서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공익성 코너였던 <단비>는 하차가 결정됐다. 그 후속으론 <뜨거운 형제들>과 같이 웃음에 치중하는 버라이어티 포맷이 준비되고 있다. MBC는 당분간 ‘묻지마 웃음’ 코드로 도전할 태세다. 성공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 물량의 SBS -


 SBS에서는 스타들의 물량공세가 돋보인다. <런닝맨>의 경우 유재석과 다섯 명의 남자들 그리고 두 명의 스타 게스트가 밤을 새며 질주한다. <영웅호걸>에는 무려 12명의 여성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주로 외모에 강점이 있는 젊은 여성들이다. 걸그룹은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가히 SBS다운 화려한 전술이다. ‘이래도 안 웃겠니?’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SBS의 앞날도 그리 순탄해보이지는 않는다. 추격전과 게임을 섞은 <런닝맨>의 경우, 재미있다는 호평과 어지럽다는 지적이 공존하고 있다. 유재석이 발군의 능력으로 진행을 조율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힘겨워 보인다. 만약 <런닝맨>을 성공시킨다면 유재석은 그야말로 신화가 될 것이다. ‘무한재석교’가 위세를 떨치고 연예대상도 받게 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영웅호걸>에는 12명이나 나오기 때문에 어지럽다는 지적이 더 크다. 모두 여성 출연진이라는 한계에 중장년층이 잘 모르는 걸그룹이 나온다는 한계까지 겹쳤다. 이런 한계들을 감안하면 <1박2일>급의 성공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웃음을 준다면 틈새시장은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하면, KBS의 불안한 수성에 MBC와 SBS의 불안한 공세가 교차하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약세와 약세가 맞붙는 뜨거운(?) 전황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도전자들이 ‘농촌, 우애, 공감, 성취감’ 등을 버리고 ‘도시, 질주, 경쟁, 묻지마 웃음’을 표방한다. <런닝맨>은 도시 랜드마크가 그 무대이고, <뜨거운 형제들>은 아예 MT까지도 스튜디오 안에서 해결했다. <영웅호걸>도 성취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1세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벗어나 그 다음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KBS의 <1박2일>과 <남자의 자격>만 철저히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 이런 포맷과 포맷의 격돌도 이번 삼국지 2차전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