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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하늘, 또다시 통쾌한 사고 치다

 

이하늘이 또 사고를 쳤다. <SBS 인기가요>가 <강심장>에 나가야 출연시키겠다고 했다며 폭로한 것이다. 표현도 직설적이었다. “그지같은 인기가요!!!”라고 적시했다.


기본적으로 통쾌하다. 연예인들에게 방송사는 절대권력이다. 이렇게 절대약자가 절대권력을 향해 소리치는 모습은 통쾌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쉽게 볼 수 없는 대형 사고인 것이다.


PD를 향해서도 소리를 쳤다. “잔뜩 어깨에 힘주고 가수들을 자기 방송에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PD들의 권위의식!! 토 나온다.”라고 말이다. 가수가 음악프로그램 PD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대형 사고 중의 대형 사고다.


과거에 서태지가 자신이 출연하는 부분을 직접 제작하거나 관여하겠다고 했을 때, 거기에 대해 서태지가 지나치게 건방지다며 PD의 편집권을 침해한 것은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한 방송 관계자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서태지가 프로그램 전체를 통제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출연자 선정에 관여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을 최고의 완성도로 보여주겠다고 하는 아티스트로서 당연한 요구를 한 것이었는데, 거기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는 관계자 인터뷰에선 권위의식이 느껴졌다. 가수를 우습게 보는 시각 말이다.


그때 방송 관계자 발언이라며 나왔던 얘기 중에 “가수는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인데 서태지가 너무 고자세”라는 식의 논리가 있었다. 가수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논리였다. 홍보를 시켜주니까 음악 프로그램 출연에 감지덕지하라는 시각.


가수들의 음악 덕분에 음악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거기에 없었다. 이하늘은 이번에 “만약 가수가 없다면 (음악) 방송은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상품을 하나씩 밀어내면서 보여주는 컨베이어벨트식 윈도우 같다. 이런 시스템에선 가수도 음악도 점점 우스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수의 위상이 점점 축소되는 것이 당연하다.


뮤지션의 위상이 극소화된 이런 환경이므로 뮤지션의 권리를 주장한 이하늘의 폭로가 특히 더 의미 있는 것이다. 뮤지션은 음악 프로그램으로부터 존중 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렇게 존중 받는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통해 우리 국민이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된다.



- 방송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


SBS는 이하늘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정확한 진실은 아직 모른다. 사실관계가 밝혀질 수도 있고,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이번에 이하늘이 제기한 문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 전에 방송사들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을 자사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연동시킨다는 기사가 나왔었다. 특히 최근 걸그룹 버라이어티 경쟁과 관련해, 경쟁 방송사 버라이어티에 출연하는 걸그룹은 자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패널티’를 준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상황이므로 이하늘의 폭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가수에게 순위 프로그램은 절대적이다. 가수는 자신의 신곡 무대를 대중에게 선보일 창구가 이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순위 프로그램을 쥐고 있는 방송사는 절대반지를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것을 자사 시청률을 위해서만 쓴다면 무책임하다.


순위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 대중음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특정 방송사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책무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순위 프로그램 논란을 벌인 것은 바로 그런 순위 프로그램의 공공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따라서 순위 프로그램과 특정 방송사 예능의 이해관계가 결부돼선 안 된다. 음악 프로그램은 순수하게 뮤지션을 위한 자리로만 운영돼야 한다.


음악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대중문화에 막대한 책무성을 가진 방송사들이 그런 책무성을 방기하고 자사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지적은 다른 부문에서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연말 시상식의 경우, 순수한 예술적 성취보다 방송사에의 기여도나 앞으로의 계약 지속 여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을 항상 받는다. 소속사와 방송사와의 비즈니스 관계도 언제나 문제가 된다.


이렇게 방송사가 자사의 비즈니스적 이익만을 내세우는 환경에선 대중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방송사는 특정 기업으로서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한국의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번에 이하늘 의혹과 걸그룹 출연을 버라이어티 출연에 연동시킨다는 보도에서 느껴지는 것은 예능 시청률 경쟁에 방송사가 과도하게 몰두한 나머지 음악 프로그램을 부당하게 흔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사실이라면 곤란하다.


중견가수가 해야 할 일이 음악적 성취만은 아니다. 대중문화질서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당당히 발언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이하늘의 이번 발언은 통쾌하다. 이하늘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연예인이라고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하늘은 다른 후배가수들이 이런 환경에서 활동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다고 했다. 중견가수가 보여주는 이런 의기에는 박수를 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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