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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티아라 지연, 김태희수렁에서 살아나왔다

 

한때는 거의 생환이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티아라의 지연은 데뷔 초에 제2의 김태희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재빨리 이름을 알렸지만 곧 ‘백만안티’에 직면했다. 비교 대상이 너무 높이 잡힌 탓이다.


‘제2의 누구’ 마케팅은 순식간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처음부터 스타와 비교됨으로서 실망감을 초래할 수 있다. 지연은 이런 쪽에서 최악의 사례였다. 당대 최고의 미녀스타와 비교됐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실망감이 발생한 것이다.


김태희 수렁이었다. 지연은 김태희 수렁에 빠져 독한 악플 세례 속에서 숨도 못 쉬는 지경까지 갔다. 작년 여름 한 인터뷰에서 지연이 눈물을 흘리며 그 고통을 고백한 일도 있었다. 올 봄까지도 지연은 그때를 회상하면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추락했던 지연이 어떻게 그 수렁에서 벗어난 것일까? 보통 ‘제2의 누구’ 컨셉은 그 사람이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연은 악플 수렁에서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탤런트 김태희와 아무 상관도 없는 별도의 연예인 지연으로서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해가고 있다.


지연이 김태희 수렁에서 생환한 이유를 따져보면 비슷한 비호감의 덫에 빠진 사람들이 참고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



- 실력 -


‘제2의 누구’라며 이름만 알리고 그 내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것과 같다. 반대로 실력을 보여주면 욕하던 사람들도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지연의 경우가 그랬다.


지연이 <혼>에 캐스팅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날을 갈기 시작했다. 백만안티가 악플을 달기 위해 대기하는 형국이었다고나 할까? 그 작품에서 지연이 조금만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면 집중 포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연은 의외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어이없는 발연기를 보여주는 아이돌 연기자하고는 달랐다. 이런 것을 통해 대중의 지연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연은 작품운도 좋았다. 올 초에 그녀는 결정적인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공부의 신>이다. 여기에서 지연은 자신의 풋풋한 매력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배역을 맡았다. ‘사랑에 빠져 안달하는 귀여운 아가씨’ 역할은 대중에게 호감을 줄 수밖에 없는 캐릭터이고, <공부의 신>은 그런 안달하는 모습을 특히 귀엽게 표현할 수 있는 역할에 그녀를 세웠다.


지연은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그 결과 원래는 주연급이 아니었지만 그 작품을 본 사람의 머릿속에선 주연 중의 하나로 인상에 남았다. 워낙 잘했고, 매력적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비호감이 사라지고, 또 ‘제2의 누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엷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돌이라고 처음부터 주연으로 시작했다면 건방지다고 괘씸죄를 받았을 텐데, 조연으로 시작한 것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극 속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승리자로 나온 것이 아니라, 피해자나 약자로 나온 것도 지연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종합하면 실력과 작품 선택, 배역운 등이 모두 작용했다고 하겠다.



- 밝음 -


지연의 반전을 굳힌 것은 예능에서 보인 밝은 모습이다. 지연은 예능에서 티 없이 밝은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터질 기세다. 아무리 악감정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이런 모습을 보며 그 앙심을 유지하긴 힘들다.


밝은 것이 예능적 설정이나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고 솔직함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지연이 보여주는 밝음은 자연스럽다. 주로 리액션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예컨대 <강심장>에서 윤시윤과 함께 나왔을 때가 그랬다.


그때 지연은 조금 ‘오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까르르 웃어댔는데, 워낙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러니까 ‘오버‘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최근 젊은 여성이 예능에 출연해 ‘가식’, ‘여우짓’ 등의 느낌을 주면 악플로 난리가 나는 경향이 있다.(워낙 악플이 심해 차마 누구라고 예를 못 들겠다) 지연의 경우엔 그 반대로 솔직한 밝음이어서 호감을 만들었다. <영웅호걸>에서 바다를 보는 장면에서도 일부 예능적 설정이 섞인 것처럼 보이는 멤버들에 비해, 지연이 뛰면서 좋아하는 장면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지연은 그렇게 밝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동시에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이것도 중요한 덕목이다. 활기차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전진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었는지를 상기한다면, 열심히 달려드는 모습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프로그램 속에서 지연의 포지션이 스타라고 대우 받는 위상도 아니었다. 이런 것도 중요하다. 대스타도 아니면서 프로그램 속에서 대우 받으면 시청자가 비호감을 느끼게 된다. 지연은 약자이고 밝은 소녀로서, 프로그램에 열심히 임하고 시청자에게 활기찬 웃음을 보여줬다. 그러자 지연을 덮고 있던 김태희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제2의 누구’ 마케팅으로 수렁에 빠진 사람은,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쪽으로 치고 나가면서 자신만의 실력과 매력을 보여줄 때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무리한 ‘제2의 누구’ 마케팅을 안 하는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