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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불편했던 감동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이 결국 예능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일개 예능프로그램의 이벤트가 대형 체육관을 가득 매운 대형 쇼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것이 <무한도전>의 힘이다.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받은 신뢰와 사랑이 축적되어 이번 이벤트로 폭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이벤트를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 유일할 걸로 생각된다. <무한도전>이 시청률과 상관없이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이런 데서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고통과 체력의 한계를 무릅쓰고 레슬링에 도전한 멤버들의 투혼은 아름다웠다.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나친 장기 프로젝트라고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이번 레슬링 대회는 장기 프로젝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에너지를 훌륭히 보여줬다. 가벼운 재미가 아닌, 저 깊은 곳까지 치는 묵직한 울림.

당대 최고의 예능프로그램, 예능의 한계를 넘어선 예능프로그램, 그야말로 국민 예능프로그램의 존재감을 제대로 과시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무한도전>이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깊은 감동, 깊은 울림이었다.


- 정준하 정형돈이 감동을 주다니 -

의외의 곳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번 레슬링 특집은 평범한 사람들이 온갖 난관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해 몸으로 이룩한 성과가 감동을 줄 거라고 예상 됐었다. 그런 종류의 감동은 당연히 있었는데, 그것 말고 생각하지 못했던 감동의 요소가 있었다.

레슬링 대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정형돈이 울렁거림을 호소했다. 급기야 복도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경기장으로 나가 태연하게 관객을 상대로 캐릭터를 연기했다.

정말 절묘하게도 바로 이때 싸이가 ‘연예인’을 부르며 축하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또 있을까? ‘연예인’은 자신이 연인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 동안 연기, 노래, 코미디로 즐겁게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무대 뒤에서 고통을 참는 멤버들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편집이 절묘했다. 싸이가 수많은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노래하는 화려한 모습과 무대 뒤에서 고통을 참는 모습을 교차편집하며 적절하게 사운드를 조절했다. 이때 눈물이 핑 돌았는데, 아마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정준하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자리를 박차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모습에서부터 감동적이었다. 그런 정준하가 도저히 몸이 안 받쳐줘서 경기 중에 정형돈을 돌리다 놓쳐버렸을 때 무정한 관중은 ‘한번더, 한번더’를 외쳤다. 정준하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황에서 레슬러 캐릭터를 훌륭히 연기했다. 아무리 개인적인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대중 앞에서 꾸며진 모습만 보여야 하는 연예인의 숙명을 이렇게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황이 또 있을까?

체육관은 축제의 장이었지만 그 뒤편 대기실은 고통과 불안으로 점철됐었다. 화려한 축제의 한복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조명이 꺼지면 인간으로서 불안을 감당해야 하는 연예인의 이면이었다. <무한도전>은 싸이의 ‘연예인’을 하나하나 자막처리하며 ‘언제나 처음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즐겁게 하는 연예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숨겨야 하는지 이번 레슬링 특집으로 알 수 있었다.

마지막 U2의 노래를 배경으로 정준하와 정형돈이 무대로 걸어나가는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하면서 흑백으로 탈색시킨 것은 이번 절묘한 편집의 백미였다. 이들은 신화속의 영웅처럼 보였다. 웬만한 영화 이상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 불편했던 감동 -

하지만 환호만 할 수는 없다. 이번의 교차편집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무대 앞과 무대 뒤의 대비가 워낙 극명했기 때문이다. 무대 뒤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런 대비가 가능했다. 그런 고통 때문에 이들의 투혼도 더욱 빛나보이고 이들이 위대해보이기도 했다.

바로 그게 문제다. 연예인이 왜 아파가면서 예능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정준하는 허리에 심각한 이상이 있을 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정형돈은 뇌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머리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울렁증을 호소하며 구토한다면 비상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결과적으론 일이 잘 끝났지만, 그런 위험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선 바로 병원에 가는 것이 맞다.

애초에 그런 고통과 위험을 초래할 일을 하면 안 된다. 예능에서 게임을 하다가, 혹은 오지 탐험 같은 것을 하다가 출연자가 다치면 비난이 쏟아진다. 이번 <무한도전>도 만약에 사고가 터졌다면 상당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프로레슬링 기술은 섣불리 도전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것들이었다. 이번에 <무한도전>의 도전이 엄청난 찬사를 받는 것을 보며 다른 예능 제작진들이 분발한다면 연예인들은 정말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레슬링 도전은 예능 도전의 수위를 다른 차원으로 올려놨다. 행여나 이것이 트렌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환호만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절대로 이런 도전이 있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사람이 다칠 수 있는 도전은 하면 안 된다. 일단 프로그램이 도전하면 출연자는 무조건 그 틀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박명수나 길처럼 욕을 먹게 된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선 애초에 제작진들이 이런 기획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출연자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비난은 연예인을 무리하도록 만들어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무한도전>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찬사만을 던질 수 없는 불편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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