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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타블로사태 네티즌 정신병이 문제인가

우려했던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타블로 사태가 그의 학력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 왓비컴즈를 비롯한 네티즌의 ‘정신상태’를 비난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일반 네티즌들은 왓비컴즈와 타진요를 비난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는 타블로를 비난하는 여론이 인터넷에 가득했었다. 그땐 타블로를 비난했다가, 지금은 그 반대편을 비난하고, 나중에 또 누군가를 비난하면,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이런 황당한 사태를 만든 우리 사회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그저 증오의 대상만 그때그때 변할 뿐이다.

MBC스페셜이 방송되기 전에 가장 우려했던 것이 이것이었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악플러들의 난동으로 규정짓고, 네티즌의 정신병적 집단행동을 비난하는 식으로 내용이 흘러가는 것. 다행히 MBC스페셜은 생각보다는 조금 더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터넷 여론의 반응은 너무 단순한데, 특히 보다 생산적인 의미를 풀어내야 할 비판 언론의 단순한 반응이 실망스럽다.

한겨레와 경향은 동시에 이번 사태에 대한 칼럼을 실었다. 먼저 한겨레의 것을 보면, ‘군집행동’이란 제목을 달았다. 제목에서부터 문제설정의 수준이 드러난다. 단순히 네티즌 집단행동의 문제로 이번 사건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불합리성을 설명하고 있다.

경향의 것도 극히 단순하다. 근본주의 테러범들의 광신과 이번 사건을 연결하고 있다. 거기에 고학력사회의 집단 열등의식, 대중의 관음 욕구 등을 지적하고 루머에서 이어지는 사이버 괴롭힘의 문제와 주동자들의 병적인 정신상태를 지적한다.

타블로 사태의 중기 국면 당시 한 진보적 인사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대중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꼽은 적이 있었다. 대체로 언론매체에 글을 쓰는 인사들은 이번 사태에서 악플러를 꾸짖는 정도의 시각을 선보였다.

이런 관점은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런 사태를 만든 우리 사회를 개선할 수도 없다. 그저 또다른 싸움판만 생길 뿐이다.

먼저, 열등감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면 상위 1%의 의혹에 대한 우리 네티즌들의 분노는 열등감에 의한 비뚤어진 난동이란 말인데, 이게 말이 되나?

악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열등감 운운하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말은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사태의 최초 원인제공자로 알려진 왓비컴즈는 그전부터 유명한 악플러였다고 한다. 그는 여러 연예인에 대해 악플을 썼다.

그중에서 유독 타블로 ‘떡밥’만 한국사회에서 터진 것이다. 터져도 보통 터진 게 아니라 핵폭발 수준으로 터졌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에서는 악플의 일반적인 문제보다, ‘왜 타블로 떡답에 한국사회가 반응했는가’를 따져야 한다. 이 물음에 대한 성찰이 없는 분석은 허당이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네티즌들의 정신상태만을 문제 삼는 것도 그렇다. 어떤 카페가 특정 연예인에 대한 안티 행위를 한다고 그것이 사회적 사태가 되지는 않는다. 사회 자체가 반응했을 때에만 악플 안티는 사태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그들의 정신상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여야 한다. 극렬한 악플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 대해 아무리 분석하고 꾸짖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사회가 그들에게 반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회가 뜨겁게 반응하면서 일이 커진다. 이런 구조에선 왓비컴즈가 사라지고 이번일의 주동자들이 사라져도, 또 어디에선가 사회가 반응하며 사태가 터질 것이다. 그때 또 악플러를 탓해봐야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

비판언론이라면 단순히 가해자를 비난하기 이전에 사회를 봐야 한다. 범죄율이 높아졌을 때 범죄자의 사이코패스적 인성을 볼 것인가 아니면 안전망이 없는 사회를 볼 것인가. 고3학생이 자살했을 때 그 학생의 인성을 볼 것인가 아니면 입시경쟁구조를 볼 것인가. 청년실업이 문제일 때 눈 높은 실업자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경제구조를 탓할 것인가.

이번 사태에선 가해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정신상태를 탓하는 목소리만 드높은 반면, 그들에게 휘둘린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이게 문제다.

만약 언론이 타블로의 학벌을 내세우며 그를 천재로 떠받들지 않고, 타블로가 군대도 가지 않는 외국 국적자가 아니었다면 왓비컴즈가 천 명이 떠들어도 ‘타블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타블로의 개인적 조건이 그대로라고 해도, 만약 우리 사회가 특권층의 편법, 반칙에 대한 불신, 분노로 들끓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역시 그 어떤 안티 카페가 활동해도 타블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악플러를 아무리 탓해봐야 분노의 에너지는 여전히 들끓을 것이고 어디에선가 맞춤한 ‘떡밥’을 만나는 순간 또 폭발할 것이다. 공분을 초래하는 사회의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악플러로 인한 연예인 스캔들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개선할 계기로 삼는 것만이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 물론 가해 네티즌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단, 그것만 있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