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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슈퍼스타K와 허각 너흰 감동이었어

우리가 '노래'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효리가 컴백했을 때라든가, 이런저런 아이돌들이 신곡을 내놨을 때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땐 대체로 '무대'라는 표현을 썼었다.

노래의 차원을 넘어서서 의상, 안무, 시각적인 카리스마 전체에서 총체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을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했었던 것이다. 이번 노래는 좋다가 아니라, 이번 무대는 좋다는 식이었다.

그럴 만큼 우리 가요계에서 '노래'는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가수가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고 종합 엔터테이너 혹은 예비 예능인, 예비 탤런트 정도로 여겨지는 시대다. 노래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즐기는 것이 가요계의 모든 것이 됐다.

<슈퍼스타K>의 미덕은 이럴 때 '노래를 듣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해줬다는 데 있다. 아마도 제작진이 처음부터 이런 목표를 가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이 시대에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했다.

김지수와 장재인이 <신데렐라>를 불렀을 때, 우린 백댄서와 노출과 섹시한 안무가 없어도, 기계음이 없어도, 단지 사람의 목소리로 구현된 노래 그 자체가 얼마나 강렬한 느낌을 주는 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슈퍼스타K>는 결과적으로 실력 있는 가수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어떤 가수가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사회에 던진 셈이 됐다. 일종의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슈퍼스타K>가 진행되는 동안 뜨거운 논란이 인터넷에서 계속됐고 그것은 결국 논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음악 자체에 대해, 우리 가요계의 현황에 대해 한번은 더 생각하게 하는 기회였다.

<슈퍼스타K>는 또 보통 사람이 순수한 열정만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통해 수많은 이 시대의 서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그것은 인간적인 감동이며 동시에 희망이었다.


- 넌 감동이었어 -

이 뜨거운 드라마는 허각의 우승으로 완결됐다. 허각이 우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예선에서 허각을 보고 누구나 비주얼 때문에 희생자가 될 걸로 짐작했었다.

그러나 허각은 계속 살아남았고 끊임없이 전진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며 허각의 자신감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허각이 처음에 보여준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착한 모습이었다. 마치 최근의 <대물>에서 지나칠 만큼 착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답답하게 한 고현정 캐릭터처럼 허각도 지나치게 착했다. 그리고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을 당당하게 내비치지도 못할 정도로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였다. 마치 이 시대 88만원세대의 표상 같았다고나 할까.

그랬던 그가 본선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조금씩 자신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마침내 샤우팅이 터져나왔을 때 그는 무대를 장악했다. 예선 때의 그 허각이 아니었다.

성장드라마다. 극적인 변신, 드라마틱한 성장, 예상치 못했던 성공.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허각의 성장은 이번에 <슈퍼스타K>가 준 감동의 결정판이라 할 것이다.

각본 없는 리얼 드라마이며 감동적인 인간극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슈퍼스타K>에서 허각이 화룡점정을 한 것이다. 허각이 음악적 자의식과 자신감을 길러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비록 감동드라마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사생활을 까발리고 출연자의 단점을 여과없이 내보내 여론재판을 유도했던 <슈퍼스타K>의 냉혹한 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씁쓸한 기억으로 남는다.

인간성 투표, 팬덤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시청자 투표의 과대한 비중의 문제도 여전히 남는다. 꽃미남이 아닌 허각이 우승했다고 해서 이 문제를 간과할 순 없다.

최소한의 합리성, 따뜻함이 보강되길 바라며 '리얼 감동 버라이어티' <슈퍼스타K>의 시즌3을 기다린다. 내년엔 제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도전자들이 많이 나타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