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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부당거래, 대물보다 섬뜩하다

류승완 감독이 또다시 사고를 쳤다. 2005년에 <주먹이 운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후 그는 뭔가 2% 부족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부당거래>로 ‘한 방’을 제대로 날렸다. 한국사회를 향한 직격탄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개인범죄자 < 조폭기업가 < 경찰 < 검찰(언론)’으로 이어지는 한국사회의 ‘부당한’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에 드라마 <대물>이 정치계, 경제계, 검찰, 방송의 커넥션을 까발려서 시청자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TV드라마라는 한계도 있고, 고현정이 정치인이 된 후론 뻔한 도덕적 이야기만 부각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 영화는 거칠 것 없이, 날 것의 한국사회를 까발린다. 그래서 <대물>보다 통쾌하고, 섬뜩하다.

무거운 사회고발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객 입장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데 있다.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사건이 착착 맞물려가는 것은 상당한 쾌감을 준다. 지겨울 새가 거의 없다.

류승완 감독은 그동안 액션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다. 이 영화에선 액션씬의 양을 줄였다. 대신에 드라마가 대단히 치밀하다. 그렇다고 액션이 약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비록 양은 줄었을 지라도 류승완표 액션의 파괴력은 여전하다.

이렇다 할 특수효과나 물량투입도 없는 상태에서, 단지 두 사내의 몸만 가지고 격렬한 액션을 만들어낸 솜씨는 감탄할 만하다. 최근 <검우강호>를 선보인 오우삼이 류승완에게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황정민과 류승범도 최근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2006년 <사생결단> 이후에 최고의 배역을 맡았고, 역시 이들답게 소화해냈다. 이들이 갈 데 없는 ‘배우’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유해진이 기대보다 덜 부각된 것이 아쉽다.

타블로 사태, 청문회 사태, <대물>의 인기, <부당거래>의 통쾌함. 이 모든 것들은 한국사회가 현재 얼마나 신뢰가 떨어져있는 상태인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공적인 시스템, 상위 1%를 향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있는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기득권을 세습하고 특권을 누리며, 없는 놈은 아무리 기를 써도 88만원 세대 꼴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절망상황. 상위 1%가 온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의심. <부당거래>는 그 지점을 통타한다.

영화 속에서 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주제에 한번 살아보겠다고 부당한 거래를 통해 몸부림치는 깡패, 경찰은 모두 아수라장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다. 살아남는 건 몸통뿐이다. 관객은 그것이 한국사회의 실체라고 공감한다.

이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슈퍼스타K> 허각에 대한 대중의 열광적 지지가 발생한 것이다. 자기 몸뚱아리 하나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88만원 세대의 신화.

<부당거래>는 그 신화를 비웃는다. 깃털은 영원히 깃털일 뿐이다. <대물>처럼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 따위의 판타지는 이 영화 속에 없다. 그래서 더욱 섬뜩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어둡고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재밌다. 살짝 신파 느낌이 나는 음악이 흐르는 장면 하나만 빼면 대체로 경쾌한 느낌이다. 사회성 있는 명작류에 대한 두려움 없이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