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이다해 사태, 추악한 한국 방송

이다해가 지난 1월에 방송에서 한 각국 영어 발음 비교가 이제 와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이 그 방송을 보고 모욕감을 느끼며 이다해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이미 예견됐던 사고다. 국가차별, 인종차별, 없는 사람 무시는 한국인의 고질병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은 떠받들면서 동남아나 중국, 아프리카, 흑인, 조선족은 무시하는 천박한 한국의 풍토는 언제든지 국제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많은 네티즌이 뭘 그런 정도로 예민하게 그러냐며 이 문제를 경시하고 있다. 차별적 발언은 그 발언을 하고 즐기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희화화당하는 약자의 심정을 너무 모른다.

그전부터 우리 방송의 국가차별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했었는데, 언제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문제 삼는다는 반론 댓글이 많았었다. 우리 국민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너무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타국인이 불쾌할 만한 내용들이 그대로 방송되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한류가 무섭다. 한류열풍으로 한국 방송을 외국에서 많이 보게 될수록 한국인의 추악한 면을 외국인들이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인터넷 기술과 아이돌 산업은 무섭게 발전하는데 한국사회의 차별 풍토는 요지부동이다. 점점 위험해진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 추악한 한국인, 한국 방송 -

사례는 너무 많다. MBC의 <단비>에선 중국 비하가 툭하면 나왔었다. 한번은 민효린이 개그맨 김현철을 따라간다는 상황극이 나왔었다. 김현철은 매력 없는 사람, 모자란 사람이라는 캐릭터다. 그것을 보고 정형돈은 ‘중국인을 만나는구나’라고 했다. 김용만은 ‘중국 갑부를 만나는구나 ... 아유 불쌍해라’라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망언이었다. 이런 내용이 버젓이 방송됐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시청자는 물론이고 언론조차도 가만히 있었다. 내가 이것을 차별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쓰자 수많은 네티즌이 정형돈을 옹호하며 나를 공격했다. 거의 아이돌 팬덤 수준의 공격이었다.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 부족하다.

과거에 KBS의 <해피투게더>에선 얼굴이 잘 생기지 않는 배우가 나왔을 때 동남아 사람 같다는 발언이 나왔었다. 역시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

SBS의 <X맨>이 중국 특집을 방영했었다. 그때 출연진들이 모두 중국에 가서 촬영을 했다. 이런 버라이어티에는 미남, 미녀 캐릭터가 중심에 등장하고 주변에 적당히 신체적 매력이 떨어지며 망가지는 역할의 웃기는 캐릭터가 곁들여진다. 프로그램에선 웃기는 캐릭터에게 ‘현지인 같다’는 말이 나왔고, 그 말을 들은 당사자가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엠넷의 <엠카운트다운>에서 가요계 변신스타 베스트5를 방영한 적이 있다. 거기에 택연이 소개됐다. 핵폭탄급 망언과 함께였다. 택연이 과거에 중국인으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다며, 그럴 정도로 외모가 부족했던 택연이 지금은 환골탈태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억’ 소리 나는 망언이었다.

사실 어느 한 개인의 사견이었던 루저 발언보다, 이런 방송내용들이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한다. 툭하면 이런 내용을 내보내는 한국 방송, 그런 어처구니없는 방송에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한국인들, 모두 추악하다.


- 신동엽과 제작진이 더 문제 -

구설수에 오른 이다해는 곤욕을 치렀다.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 확장되는 우리 연예인들의 부주의는 언제든 사태를 만들 수 있다. 장나라도 <강심장>에서 무심코 한 말 때문에 중국인들의 항의를 받았었다. 소녀시대의 태연은 ‘흑인치고는 예쁘다’는 황당한 말을 했었다. 카라의 한승연은 자기 여권 사진이 잘 안 나와 남에게 보이기 부끄럽다며 ‘베트남 소녀’처럼 나왔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춤연습만 한 사람들이 방송계 주류가 되면서 우리 방송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행자와 제작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진행자가 방향을 잘 조절해야 하고, 그래도 불거진 망언은 제작진이 잘라내야 한다.

이번 이다해 사태의 문제점은, 그녀의 발언을 유도한 것이 진행자인 신동엽과 제작진이라는 데 있다. 이다해는 필리핀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신동엽이 말했고 제작진이 자막처리까지 해가며 강조했다. 심지어 국기까지 넣었다.(!) 무개념의 극치다.

어린 연예인부터 진행자, 제작진에 이르기까지 통째로 무개념인 것이다. 언제 어떤 사고가 또 터질지 무섭다. 조금만 방심하면 은연중에 튀어나올 정도로 한국인의 차별의식, 혹은 약자의 불쾌감에 대한 몰이해는 뿌리 깊다. 이런 상황에선 소득이 낮은 국가나 인종, 지역을 예능 소재로 활용하는 걸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외국인의 한국 비하엔 그렇게나 예민한 사람들이 왜 당하는 외국인의 심정은 못 헤아릴까? 역지사지하지 못하면 한국은 국제적 왕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