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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걸그룹 전성기는 여성의 전성기일까

2010년에 한국 영화계에서는 여배우들의 곡소리가 터졌다.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2010년엔 거의 독식이라 할 정도로 남자배우들이 강했다. 흥행 1~5위 작품들인 <아저씨>, <의형제>, <전우치>, <이끼>, <포화속으로>가 모두 남자들의 영화였다. <의형제>의 송강호 강동원, <부당거래>의 황정민 류승범, <황해>의 김윤석 하정우에 이르기까지 커플들까지 남남구도여서 여배우들을 절망케 했다. 이건 충무로의 제작자나 감독에게 갑자기 남자애호취향이 생긴 결과가 아니다. 관객이 남자배우들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는 것은 우리 여배우들이만, 관객은 요지부동 남자배우들만을 원했다.

드라마에서도 그렇다. 수많은 인기 드라마가 있었고, 인기 배우들이 있었지만 시청자에게 화제가 된 캐릭터는 대체로 남자들이었다. 까도남, 짐승남, 꽃미남, 흑기사 등의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2010년 SBS 대표드라마는 남자드라마인 <자이언트>라고 할 수 있고, KBS도 남자드라마인 <추노>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 필적할만한 남자드라마를 못 만든 MBC는 이렇다 할 대표작 하나 없이 2010년을 보내고 말았다. 물론 영화판보다는 사정이 낫긴 하지만 경향적으로 남자들이 우세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능계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MC들이 주도하는 리얼버라이어티와 게스트들이 주도하는 집단토크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 리얼버라이어티는 철저히 남자들만의 세상이다. 인기 있는 MC도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 남자들뿐이다.

말하자면 2010년은 ‘쌍빈양강’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원빈, 현빈, 유재석, 강호동의 시대인 것이다. 양강을 삼강으로 확장하면 3대 국민MC의 시대를 열어젖힌 이경규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사람 수를 더 확장해도 여자는 꼽기 힘들다. 왜 이렇게 남자들만의 세상이 됐을까?

- 보편적 인간미는 남성들의 전유물? -

<개그콘서트> '남보원‘의 인기에서 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코너는 여성들의 허영, 가식 등을 성토하는 내용이었는데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거기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성의 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예능에서 여성들은 명품백에 사족을 못 쓰는 존재로 그려진다. 대표적인 공감 예능인 <롤러코스터>에선 여성들이 비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강남대로를 활보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표현된 바 있다. 유명한 외국계 커피전문점이 처음 한국시장에 진입했을 때 명문 여자대학 앞에 점포를 냈다는 것도 여성들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에 영향을 미친 삽화였다.

이런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이 ‘된장녀 혐오’다. 젊은 여성들이 잠재적 된장녀로 간주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얄미운 존재라는 평소의 울분은 가끔 ‘00녀’ 사건이 발생할 때 놀라운 열기로 터져 나온다. 여성들은 자기 예쁜 것만 신경 쓸 뿐, 사회성도 부족하고 우애도 잘 나누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일쑤다. 거기에다가 ‘드센여자’를 혐오하는 전통적인 편견은 나이 든 여성의 활발한 예능활동마저 가로막고 있다.

우애, 정, 공감 등을 통한 인간적인 감동에 대중은 열광했는데, 앞에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여성에게서 그런 인간미를 느끼지 못했다. 인간미는 남성들, 그중에서도 아저씨들의 전유물이 됐다. 또 강한 자극을 원하는 세태도 남성들만이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여성들이 어떻게 레슬링을 하며, 영하의 날씨에 야외에서 잘 수 있겠는가. 남성들만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데, 이건 남성들만이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 한다는 인상을 만들어냈다. 끈끈한 정도 여성들보단 남성들에게서 더 많이 느끼는 경향이 있다.

<아저씨>의 원빈이나, 흑기사 캐릭터, ‘까도남’ 현빈 등은 모두 누군가를 지켜줄 만큼 강한 존재들이다. 경쟁에 지치고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은 따뜻한 품을 원한다. 능력 있는 남성들은 그런 품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 반면에 여성은 그런 품에 기대길 원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약하고, 인간미도 부족하고, 최선을 다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여자들을 보기 위해 극장표를 살 관객은 별로 없었다.

가식과 허영, ‘예쁜척’을 벗어버리고 진솔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줌마들은 위에 설명했듯이 드센 여자라는 덫에 걸렸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주말 메인 버라이어티에 나올 때, 아줌마들은 <세바퀴>에서 억척스러운 토크나 해야 한다.

- 여성은 귀엽고 섹시한 존재? -

유일하게 여성들이 제패한 부문이 가요계다. 여기선 걸그룹 열풍이 불었다. 귀엽고 섹시한 소녀들이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귀엽고 섹시하다는 건 누군가에게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즉, 능동적이지 않고 여전히 수동적인 이미지이다.

능동적인 남성들은 꽃미남부터 아저씨까지 주활동 연령대를 넓히고 있지만,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에게 귀여운 섹시미를 줄 수 있는 시기로 연령대가 점점 한정되고 있다. 그리하여 가요계에 소녀들의 전성기가 온 것이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소녀종결자’ 아이유와 걸그룹의 ‘끝판왕’ 소녀시대다.

아이러니다. 여권이 사상 최대로 신장되고 수많은 남성들이 남성역차별론을 주장하는 지금, 여성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여성들이 갇힌 남성들의 시선의 감옥은 외모와 나이를 기준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아줌마들을 포박한 드센 여자라는 편견의 감옥도 강고해졌다. 최고의 드라마인 <추노>가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남성 캐릭터들의 경연장이었던 데 반해, 이다해는 예쁜 여자 정도로 박제화한 것이 2010년을 상징하는 풍경이었다.

이런 사정은 2011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가가 작게 파도를 치더라도 큰 틀에서 경향성을 유지하듯이, 작은 차원의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의 경향성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황을 만든 사회, 경제, 교육적 조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양극화와 경쟁이 심해질수록 여성의 수동성과 남성의 강함 사이에 대비가 뚜렷해질 것이다. 여성에게까지 내면화된 사회적 편견과 여성의 경제적 열악함도 달라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다툼의 격화도 여성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상황이 열악해질 수록 여성은 자신의 마지막 경쟁력인 외모에 치중하며 경제적 안정을 구할 것인데, 그것이 다시 된장녀 혐오를 강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다. 걸그룹 전성시대에도 여성은 여전히 고달프다.